'지구는 인류가 없어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지구를 떠나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뿐인 지구입니다’.
지구가 직면한 기후위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제3회 하나뿐인 지구영상제가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영화의 전당에서 열렸다. 이번 영상제의 슬로건은 ‘다시 지구, Our Only Home’ 이었다.
하나뿐인 지구영상제는 (사)자연의 권리찾기가 주최하는 기후위기, 탄소중립 등 친환경 주제의 영화제이다. 이번 영상제에는 전 세계 129개국에서 2,133편의 작품이 출품되어 이 중에서 29개국 41편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선보였다. 이와 동시에 기후변화 콘퍼런스와 친환경 메이커들이 참여하는 그린 라이프쇼도 함께 마련됐다.
5일 개막작은 그레그 제이컵스, 존 시스켈 감독의 <히어 나우 프로젝트(The Here Now Project)>였다. 이 작품은 에미상 수상작인 9/11 다큐멘터리 <미국을 바꾼 102분(102 Minute that changed America)>의 사용자 제작 중심 동영상 접근방식을 기후변화 문제에 적용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영화적이라기보다는 날 것 그 자체이며 교육적이거나 설명적이거나 노골적으로 정치적이지 않는 대신 본능적이고 몰입도가 높으며, 극한의 날씨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가장한 기후변화 영화이다. 이 작품은 기후로 인해 증폭된 1년간의 기상이변을 하나의 내러티브 경험으로 압축해 이제 이 모든 것에 무감각해져 버린 관객들에게 기후변화의 시급성을 전달하고 있다.
이번 영상제에서 상영된 영화 중 필자와 인연이 있는 영화 하나를 소개한다. <투르카나족의 기후전쟁(Between the Rains)>이다. 이 영화 상영후 관객과의 대화를 맡았기 때문이다.
<투르카나족의 기후전쟁>은 아프리카 케냐의 강수량이 연이어 최저를 기록하던 4년간 투르카나-은가레마라 공동체의 협력으로 제작된 영화로 기후변화의 상황에서 문화절멸에 이른 이들을 대변한다. 영화는 ‘염소들과 함께 사는’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청년 콜레의 성장영화이다. 계속되는 가뭄을 겪는 동안 콜레는 이미 정해진 전사로서의 정체성뿐 아니라 그의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주는 문화침식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고, 내적 갈등을 겪는다. 콜레의 여정 안에서 땅의 상실, 물의 범람, 인간과 야생의 문제 등을 마주하며 기후변화가 목축인 투르카나족의 삶의 모든 방면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보게 된다. 원제는 ‘비와 비 사이’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 시간 동안의 투르카나족의 현실을 담은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감독 앤드루 브라운은 알래스카 시골에서 태어난 스코틀랜드 휴런 웬다트족 선주민 출신이다. 미 전방관측 장교로 십년간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다수의 사회경제 개발프로젝트에서 인도주의 영화감독으로 일했다. 모지스 서라니라는 케냐 이시올로 출신의 프로듀서로 자신의 경험을 투영해 영화의 접근법이자 스토리를 진정성 있고 사려깊은 태도로 구성해 발전시켰다.
이 영화 장면 중 ‘강이 꽉 차면 생명은 평화롭고 두려움은 없다. 그러나 비와 비 사이에는 강은 건조해지고 이웃은 적이 된다.’ 갈수기 염소를 훔쳐간 이웃 삼부르족과의 사투와 마지막 비가 내리면서 세상이 다시 생명평화를 찾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몰입과 감동’ ‘대형 스크린에 딱 맞는 작품’ ‘기후변화의 직접 영향을 매혹적이고 명료하게 직시’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82분간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프로그래머 황혜림 씨가 사회를 보고 필자가 게스트로 나섰다. 먼저 관객들의 반응을 들었다. 너무 충격적이고 갈수기의 케냐 투르카나족의 생활이 안타깝다고. 콜레를 어찌 입양을 해서라도 공부를 시키고 싶은 마음이라고. 기후위기가 이렇게 심각한데 우리는 너무 이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너무 낭비를 많이 한다는 성찰의 이야기가 나왔다.
필자는 이번 관객과의 대화를 준비하면서 케냐에 대해 무지함에 스스로 놀랐다. 아니 아프리카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없었다. 필자의 고교 친구로 28년간 케냐 나이로비에 선교사로 가 있는 최웅락 목사에게 오전 11시쯤 카톡을 보냈더니 마침 새벽 5시(시차 6시간)에 일어났다며 답이 왔고, 보이스톡으로 통화를 했다. 최 목사는 투루카나에 목회일로 2번 정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그곳 사람들은 나이로비 쪽으로 나올 때에 “케냐에 간다”고 할 정도로 투르카나 지역 자체를 자신들의 나라라고 생각할 만큼 토착적이라고 했다.
필자는 우선 케냐 국기와 인근 탄자니아 소말리아 보츠와나 국기를 비교해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어느 것이 케냐 국기인지 물어봤다. 다들 낯설어했다. 필자도 케냐 국기를 몰랐으니까. 이 영화는 마치 한편의 ‘동물의 왕국’을 본 듯 우리하고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케냐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본 결과 케냐공화국은 국토면적이 우리나라의 약 6배, 인구는 약 5,500만 명으로 우리와 비슷하다. 언어는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쓰고 영국에서 1963년 독립했다. 종교는 기독교가 약 80%. 최 목사 이야기로는 15% 정도만 실제 교회에 다닌다고 했다. 육상 장거리 강국에 마라톤은 세계 최강국이다. 오바마 미 전 대통령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200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왕가리 마타이가 이 나라 출신이다. 현재 케냐는 기후변화로 인해 최악의 가뭄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투르카나족은 케냐 북서부의 투르카나 카운티에 거주하며 동쪽 투르카나 호수, 남쪽 삼부르족, 서쪽 우간다, 남수단, 북쪽 에티오피아와 인접하고 있고, 케냐 인구의 2%인 100만 명으로 반유목 민족이라고 한다.
이날 영화를 보면서 빗물의 소중함을 절감했다. 우리가 그냥 수돗물 꼭지만 틀면 나오는 물 한 방울이 바로 케냐에서는 생명 그 자체였다. 케냐는 연간 1인당 물 이용 가능량이 500㎥ 정도밖에 안 되는 물 부족 심각 국가이다. 우리나라는 2000~2500㎥ 정도이지만 물 부족 가능 국가에 속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 같다.
KBS뉴스(2022년 7월 28일)는 ‘5천만 명이 굶어죽는다?…아프리카 대륙 이상기후 근황’이란 보도에서 케냐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등 동아프리카 나라들이 역대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고 케냐 북부는 이미 3년째 우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탄소배출을 가장 적게 하는 아프리카 나라들이 기후위기를 가장 먼저, 가장 심하게 겪고 있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지난 2020년 정부를 상대로 기후위기 방관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는데 지난 8월 말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하고 관련 법 제정을 2026년 2월까지 할 것을 명했다.
세계는 기후변화로 기후난민을 양산하고 있다. 고향 정착이나 고향 귀환을 방해하고 생계 수단을 위협하며 분쟁이 늘어난다. 비정상적인 폭우, 오랜 가뭄, 사막화, 환경 악화, 해수면 상승과 사이클론 등 극단적인 현상의 강도와 빈도 증가로 인해 연간 2,000만 명이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대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집단이 아닌 책임이 적은 집단이 더 큰 피해를 보는 ‘기후불평등’이 만연해 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스톡홀름환경연구소 공동보고서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117개국의 소득 상위 10%가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52%를 차지하고, 소득 하위 50%는 7%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제부터 우리도 재난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 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에는 자연재난 사회재난의 종류와 행동요령이 잘 나와 있다. 도시생존전문가 우습엽은 『재난시대 생존법』(2014)에서 “재난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 당신은 스스로 생존하고 가족을 보호할 준비가 되었는가?”라고 묻는다.
지난해 9월 2일 제2회 하나뿐인 지구영상제에서도 필자는 영화 <원자력 비망록>을 관람한 뒤 관객과의 대화를 가진 적이 있다. 자오 량 감독의 영화로 중국명은 ‘돌아갈 곳이 없다’(無去來處), 영어 제목은 ‘정말 미안해’(I’m So Sorry)이다. 우리나라 영화 <판도라>에서처럼 원전사고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때다.
<투르카나족의 기후전쟁>은 우리가 정말 국제이해나 공감이 참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이를 위해서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를 제대로 인식하고 실천하며 이를 제도화는 노력이 절실하다. 가난 탈출, 기아 탈출, 건강과 웰빙, 평등교육, 성평등, 맑은 물과 위생, 나은 일자리와 경제성장, 산업·혁신·인프라, 불평등 해소,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 책임 있는 소비와 생산, 기후행동, 물밑생물, 육상생물, 평화·정의·강력한 제도, 목표달성을 위한 파트너십 등 17개 분야의 이들 목표에 인류가 집중해야 할 때이다. 우리의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마하트마 간디가 일찍이 말했다. “미래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개인, 가정의 재난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지역공동체의 안전, 나아가 기후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문제까지 의식을 확장하고 집단지혜를 모아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 일아닐까?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이번 영상제에서는 필자의 코너 외에도 다양한 환경전문가 토크가 있었다. △<육식: 지속불가능한 발자국>(이수종, 신연중 교사) △<댐버스터-강 혁명의 시작>(박재현 인제대 교수) △<파라다이스>(최승희 생명의 숲 팀장) △<로테크: 비첨단의 삶>(강신호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대표) △<디 엔드 위 스타트 프롬>(차연근 기후변화에너지대안센터 대표) △<기후과학자의 특별한 탄소여행>(지안루카 그리말다, 기후과학자) △<커피 전성시대>(임수정 구아코코리아 대표> △<푸드 주식회사2>(최현호 두레소비자생협연합회 상무) △<늑대의 나라에서>(민은주 부산환경운동연합 전 사무처장>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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