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원전사고 38주기를 이들 앞둔 24일 부산고리2호기수명연장·핵폐기장반대범시민운동본부가 전문가 초청 특강 및 원전자료실 개관, 시민사랑방을 가졌다.
범시민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4시 부산YMCA 18층 MC실에서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松山)대 명예교수를 초청해 ‘노후원전 수명연장, 과연 경제적인가?-일본 원전의 수명연장, 현황과 문제점’을 주제로 특강을 가졌다.
또한 이날 장정욱 명예교수가 기증한 원전 관련 일본 책 1,500여 권과 전문 잡지 500여 권 등 2,000여 권을 비치한 ‘장정욱원전자료실’이 부산역 인근 습지와새들의친구 사무실 공간에 마련됐다.
장정욱 마쓰야마대 명예교수는 1955년생으로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일본 교토대 경제학과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마쓰야마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3월말에 퇴직했다. 현재 일본환경회의(JEI) 이사이기도 하다. 주로 환경경제학, 지방재정론, 원자력정책론을 연구·강의했고, 저서로 『재처리와 고속로』(경향신문사, 2016), 『원자력손해배상제도의 법경제적 분석』(경향신문사, 2019) 등이 있다.
장 교수는 “원전은 수명연장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일본은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안전신화의 붕괴를 인정했지만 기시다 정권이 들어서면서 원자력규제위원회의 독립성이 사라져 사고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는 게 문제”라고 말을 꺼냈다. 장 교수 특강의 요지는 이러하다.
후쿠시마원전사고 이전의 일본은 ‘가혹사고(Severe Accident)’ 개념이 정리돼 있지 않아 도쿄전력과 같은 사업자의 자율적 조치에 맡긴 형식적 방재대책만을 갖고 있었다. 당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자문위원회로 추인기관에 불과했다.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전환이 일어나는데 가혹사고 발생을 상정함으로써 ‘원전 안전신화의 붕괴’를 인정하고 사고관리(Acccident Management)를 의무화했다. 사고의 진전·확대의 방지와 영향완화를 위해 확률적안전평가(PSA)에 비해 ‘확률적위험평가(PRA)’를 적극 이용했다. 지역방재계획도 종래에 비해 피폭 안전기준을 종래 370mSv에서 100mSv 이하로 강화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원자력규제위원회로 독립하고 사용정지명령의 권한을 갖게 했다. 그러나 기시다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고 전으로 급선회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원자력규제위원회 설치법에 가혹사고가 아닌 ‘중대사고(Major Accident) 대책 강화’란 표현을 쓰고 있는데 중대사고란 기술적 관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대사고를 말하기에 가혹사고 또는 가상사고(Hypothetical Accident)와 같이 ‘기술적 관점에서 일어날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 사고’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일본의 경우 구 안전기준에서 신 규제기준은 설계기준을 강화하고 테러대책 등을 도입하는 등 안전을 강화한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성을 이유로 이러한 일본의 신 규제기준을 제대로 도입·적용하고 있지 않아 안전성 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신 규제기준은 활성단층의 활동성 평가를 엄격화했다. 1987년엔 5만년 전의 활동성만 확인했는데 2006년엔 12만-13만년 전, 2013년 이후엔 40만년 전의 활동성 확인을 추가했다. 또한 내진설계상 가장 중요한 S급 건물은 활성단층 위에 설치를 금지하는 등 단층 위의 중요시설 설치 금지를 명확히 했다. 또한 쓰나미평가 및 대책을 신설해 기준쓰나미의 도입, 침수방지, 내진성 쓰나미방호시설을 설치했다. 돌풍·태풍, 화산, 삼림화재, 적설·저온 등 기타 자연현상에 대한 고려도 신설했다. 케이블의 ‘불연성(不燃性)’ 및 ‘난연성(難燒性)’ 원칙을 엄격히 적용해 종래 2대이던 비상용디젤엔진을 3대로 늘리고 가반형 발전기 2대를 확보하며 내부침수대책은 물론 야간용 전원내장조명을 설치하는 등 정전을 전제로 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 규제기준은 우리나라에는 아직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도 문제가 있는데 일본의 경우 가혹사고대책의 신 규제기준으로 △전원차등의 대체전원설비의 배치 △특정중대사고 등 대처시설의 설치 즉 테러대책이 5년간 설치유예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2013년에는 법 시행 후 5년 이내 설치하기로 돼 있었는데 2016년에는 본체시설 공사허가 후 5년으로 후퇴했다는 것이다. 테러대책과 관련해서는 고의에 의한 대형항공기 충돌과 그 밖의 테러에 대처하는 시설로 철근 콘크리트를 보강한 지하터널로 요새화하도록 규정해놓았는데 이 경우 원전 1기당 약 수 천억원에서 1조원의 비용이 들 정도라고 했다.
장 교수는 일본에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원전운전기간을 현재 40년에서 60년으로 연장하려는 연장허가제도가 암암리에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2012년 ‘원자로 등 규제법’에서는 원칙적으로 40년에, 예외적으로 1회만 20년 연장을 하도록 돼 있었는데 지난해 5월 연장을 보편화하고 ‘60년 초과’ 운전도 가능하게끔 법을 바꾸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래 ‘원자로 등 규제법’에서 규정하던 원전운정연장을 경제산업성이 주도하는 ‘전기사업법’으로 이관해 최장 60년 운전연장 가능 조항을 유지하면서 60년 초과 운전연장을 원자력규제위원회 심사가 아닌 경제산업성 차원에서 인가를 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는 원전 안전보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탈탄소 및 전력공급 관점에서 운전여부를 판단함으로써 규제의 독립성이 붕괴되는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이처럼 일본이 수명연장에 집착하는 것은 전력수요의 저하와 약 1조엔이 드는 원전 신설비용보다 수백억엔 수준인 수명연장 비용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안전성 및 피난계획의 부실로 인한 일연의 법적 소송에 대한 부담과 최종처분장의 미확보와 부지 내 수조의 한계 등 신규 원전 건설이 곤란한데 따른 고육지책”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결론으로 “원전의 안전성을 무시하면 원전업계의 이익 보장 차원에서 원전연장은 경제성이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위험을 부담하는 일”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윤석열 정부 들어 안전성을 무시하는 사례가 많고, 일본의 잘못된 수명연장 사례를 도입할 소지가 많은데 수명연장 또는 가동연장은 국가적 차원에서 결코 경제적이지 않으며 무엇보다 안전성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는 잘못된 정책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은 아무리 설비 교체를 한다고 해도 콘크리트시설이나 원자로의 교환은 불가한데 이 경우 취성천이온도의 상승과 시험편의 부족 문제로 원자로가 마치 유리컵에 갑자기 뜨거운 물을 부을 때 컵이 깨지는 것과 같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며, 1,000~2,000km에 이르는 케이블의 불연성 또는 난연성 확보 및 점검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가혹사고 발생 가능성은 늘 잠재돼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장정욱 교수의 특강에 이어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장인 이원영 전 수원대 교수가 오는 6월 일본 교토에서 있을 ‘핵오염수STOP세계시민행진’에 대해 참가 홍보를 했다. 핵오염수STOP세계시민행진은 오늘 6월 8일 오후 3시 교토시내에서 행진 후 세계시민대회를 연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30명이 참석할 예정이며 6월 6일 오후 3시 부산항을 출발 다음날 오전 11시 오사카남항에 도착해 행진을 하며, 8일 교토 세계시민대회, 9일 오후 2시 오사카 탈원전 집회에 참가하고, 10일 오전 10시 기자회견과 함께 세계시민선언서 채택을 할 예정이다. 교토 세계시민대회 참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장인 이 교수(010-4234-2134)로 연락하면 신청이 가능하다.
이날 부산YMCA 특강을 마친 뒤 오후 7시30분에는 부산 동구 초량중로 55 습지와새들의친구 5층 사무실 내 ‘장정욱원전자료실’에서 시민사랑방이 열렸다. 초대손님은 앞서 부산YMCA에서 특강을 한 장정욱 마쓰야마대 명예교수. 장정욱원전자료실은 마쓰야마대를 퇴임한 장 교수가 기증한 원자력 관련 책·잡지 등 일본어 자료로 약 2,000권 종이상자 27 박스 분량이다.
장정욱원전자료실의 자료는 크게 △원자력공학(약 300권) △원자력손해배상제도·원자력보험(약 60권) △원자력요금제도(약 30권) △원자력입지제도(약 20권) △피난방재제도(약 10권) △지진대책(약 50권) △핵무장과 국제정치(약 30권) △핵실험(약 40권) △체르노빌원전사고(약 100권) △후쿠시마원전사고(약 300권) △방사능피해대책·의학(약 100권) △일본의 원자력정책(약 50권) 등 다양하다.
장정욱원전자료실은 세부분류를 한 뒤 조만간 시민·전문가에게 공개할 방침입니다. 자료실 관리는 필자가 맡기로 하였으며, 현장 열람 및 대출은 효율적 관리를 위해 사전 이메일(seablue1003@gmail.com) 신청을 통해 정해진 규칙에 따라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날 시민사랑방에서 장 교수는 “제가 평생 보던 원전 관련 자료를 한국 시민사회에 제공하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일본의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상당수가 70대가 많은데 이들이 지금도 후회하는 것이 스스로 이런 공부를 깊이 있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도 시민사회가 탈원전에너지전환이나 기후위기문제 등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에 참고가 될 만 책들을 기증한 겁니다. 앞으로 잘 활용되기를 바라겠습니다”라고 인사말을 했다.
정상래 부산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장 교수님이 평생 손때가 묻은 책들을 우리나라 시민사회에 제공한 데 대해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에 자극을 받아 우리 시민사회도 정말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학술적 기반을 다지면서 운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차성환 범시민운동본부 공동대표는 “한국사회에서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직업윤리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연구 용역으로 먹고 사는데 치중하고, 자기이해에 매몰돼 학문적 소신이나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안 보이는 것에 개탄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엘리트이고 전문가라며 국가나 지자체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있는데 앞으로 장 교수님 같은 분들이 지금까지 해오신대로 소신있게 공적 발언을 하시는 게 큰 힘이 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부족한 게 있으면 교수님께 도움을 더 많이 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미향 씨는 “저는 한국중앙연구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최근에는 탈원전활동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원전자료실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차연근 기후(변화)에너지대안센터 대표는 “소중한 자료를 기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녹색당 활동을 했지만 이런 자료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런 자료를 젊은 친구들이 좀 더 자주 접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의견을 내놓았다.
김현욱 탈핵활동가는 “오늘 이곳 원전자료실에서 올곧은 지식인의 열정과 삶이 묻어난 자료를 보았습니다. 이러한 자료들이 좀 더 잘 활용돼 우리나라 탈핵운동에 큰 도움이 됐으면 하구요. 앞으로 장정욱원전자료실이 더욱 확대돼 우리가 꿈꾸던 제대로 된 한국 탈핵정보관 같은 것이 만들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바람을 이야기했다.
박중록 습지와새들의친구 운영위원장은 “저희 단체에서 부족하지만 이런 공간을 만들게 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장 교수님이 그동안 해오신 일을 우리 지역시민사회가 좀 더 이해하고 앞으로는 기후위기문제까지 폭넓게 공부하는 그런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간정리나 자료 관리를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장정욱 교수는 “일본에 한국중앙연구원 소속 연구원이 박사과정을 하면서 ‘원전과 지역경제’에 대한 연구를 하겠다고 해 그 분 한테는 미리 4상자분의 책과 자료를 건내주기도 했습니다. 일본어 자료라고 해서 어렵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작은 공부모임도 만들고 해서 하다보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재처리나 고속로 분야와 같은 전문적인 면에서 연구를 집중하고 일반적인 원전이나 탈원전문제는 여기 있는 자료를 이해하시면 상당부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이름을 굳이 안 붙여도 되는데 이렇게 원전자료실을 잘 만들어주신 부산지역 시민사회 여러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했다.
<본지 객원기자 /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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