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억새를 베어내야 차나무가 드러난다. 사진= 조해훈
베어낸 잡풀들의 무더기들이 차산 곳곳에 있다. 일 마칠 때 낫과 팔로 움켜쥐고 낭떠러지에 버린다. 사진= 조해훈
아침에 낫을 갈아서 들고 차산(茶山)에 올라갔다. 아래 차밭에 낸 길을 좀 더 다듬으며 위 차밭으로 향했다. 차밭 사이에 난 길은 이리저리 고불고불했다. 일부러 그렇게 길을 낸 것은 아닌데 막상 다녀보니 그러하였다. 오른쪽 폐모노레일 부근은 길이 편하지 않다. 멧돼지들이 칡뿌리를 캐 먹는다고 파놓은 구덩이가 있어서다.
차산에서 일을 하다 필자의 모습을 셀카로 촬영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작업복을 벗은 상태다.
낫으로 폐모노레일을 “탕” “탕” 소리가 나도록 일부러 쳤다. 멧돼지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나름의 방편이다. 위 차밭 위쪽에 멧돼지들의 집이 있는지 차밭으로 잘 내려오기 때문이다. 아래 차밭에서 위 차밭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좀 있다. 장화를 신고 매일 다니는 필자도 미끄러진다.
어둑해질 무렵 일을 마치고 내려가기 전에 원두막에 잠시 앉아 불이 켜진 건너편 용강마을을 바라본다. 사진= 조해훈
아래 차밭에서 위 차밭으로 오르면 바로 원두막이 있다. 오늘부터 기온이 오르는 모양이다. 오랜만에 맛보는 봄햇살이다. 그동안 기온이 낮고 햇빛이 거의 나지 않았다. 햇살이 좋아 작업복 윗도리를 벗었다. 원두막에서 내려갔다. 오늘은 많지 않더라도 고사리를 꺾을 생각이다. 꺾을 수 있는 고사리가 한 개씩 보였다. 해마다 가장 먼저 고사리가 올라오는 지점이 있다. 그런데 올해는 그 지점에 아직 고사리가 한 개도 보이지 않고 있다. 올해 첫 고사리를 한 개 꺾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묘했다. 감동적이다.
2025년 올해 처음 차산에서 꺾은 고사리. 사진= 조해훈
이쪽저쪽 다니며 고사리를 한 개씩 꺾었다. 그러면서 제대로 정리가 안 된 부분은 낫으로 계속해서 남은 풀과 가시들을 잘랐다. 그러니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병행했다. 위 차밭의 왼쪽과 오른쪽 폐모노레일 사이에 고사리가 좀 난다. 그렇다고 고사리가 올라오는 공간이 그다지 넓지는 않다. 필자가 먹고 가족 나눠 먹을 정도의 양이다. 어제까지 정리하지 못한 풀들을 베면서 고사리가 보이면 꺾었다.
잡풀들을 베어내니 차나무들이 깔끔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조해훈
겨울 엄동설한을 이겨낸 고사리여서 그런지 굵다. 이 첫 고사리가 가장 맛이 좋고 영양가가 많다고 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양옆과 위쪽을 다니며 가능하면 고개를 펴 든 고사리를 꺾었다. 위쪽으로 아직 정리를 하지 못한 지역에도 고사리가 하나둘 보였다. 그쪽은 유난히 잡목이 많다. 낫으로 잡목과 억새 등을 베면서 고사리가 보이면 꺾었다. 두릅도 싹이 올라온 게 있으면 역시 땄다.
낫으로 이 지역을 다 정리하려면 이틀은 걸릴 것이다. 여하튼 조금씩 잡풀들을 자르면서 모으니 금방 두 무더기가 되었다. 나중에 내려가면서 무더기를 낫과 팔로 감싸안고 가 버릴 심산이다.
오늘 아침에 차나무를 칭칭감아 옥죄고 있는 칡넝쿨 등을 잘라내 한곳에 모아 놓은 모습. 사진= 조해훈
오늘은 오전 11시에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판결이 있는 날이다. 판결이 났는지 지인들로부터 카톡이 연달아 온다. 8대 0으로 인용 결정이 난 모양이다. 그러면 이제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바로 내려오게 된다. 필자는 2017년 봄에 지리산으로 들어오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은일(隱逸)하기로 했다.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은 아니나 세속으로부터 멀어지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에도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와 지인들이 끊임없이 필자가 보든, 그렇지 않든 막무가내로 카톡과 문자, 전화를 해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여하튼 그건 그렇고 벌써 시간이 정오가 되었다. 아침을 먹지 않고 산에 올라가 배가 몹시 고프다. 또한 날씨가 덥고 햇빛이 강해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올라올 생각이다. 앞치마에 붙은 주머니에 고사리가 3분의 1쯤 담겼다. 원래 이 앞치마는 찻잎을 따 넣는 용도이다.
잘라놓은 잡풀과 잡목 한 무더기를 팔로 감싸안고 내려와 낭떠러지에 던졌다. 그리곤 원두막에 올랐다. 안경을 벗어 땀을 훔친 후 낫을 들고 내려왔다. 집에 와 고사리와 두릅을 따로 분리해 각각 다른 용기에 담았다. 그런 다음 거실에 작은 판을 펴 고사리와 두릅을 올려놓고 별도로 종이에 적지 않고 약식으로 조상님들께 고(告)했다.
“조상님들께 고합니다. 올해 조상님들 덕으로 2025년 첫 고사리와 두릅을 조금 땄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고사리와 두릅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봄에 이것들을 많이 채취할 수 있도록 잘 보살펴 주십시오. 더불어 술도 한 잔 올리지 않고 간략하게 고(告)만 올리는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오늘 올들어 필자가 처음 꺾은 고사리를 집에 갖고와 냄비에 삶고 있다. 사진= 조해훈
삶은 고사리를 옥상에 망을 깔아 말리고 있는 모습. 사진= 조해훈
양은 적지만 말린 고사리를 걷어 자그마한 소쿠리에 담았다. 사진= 조해훈
그런 다음 부엌으로 가 냄비에 물을 끓여 고사리를 삶았다. 고사리의 양은 많지 않으나 용기가 작아 두 번 나눠 삶았다. 삶은 고사리를 옥상으로 갖고 가 고사리 말리는 망을 펴 흩어 늘었다. 이 정도 양의 고사리로는 제수용으로도 부족하다. 서너 번은 더 고사리를 꺾어 제수용으로 말려 봉지에 넣어둬야겠다. 그 이후에 꺾는 고사리는 나물로 먹과 가족에게 조금 나눠준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