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157) 대한(大寒) 날에 차산(茶山) 올라 차밭 정리

위쪽 차밭 사이 길 낫으로 정리
억새·묵은 고사리·웃자란 차나무
해마다 정리해도 일 년 새 막혀
해 지고 어둑해져 마을로 내려와
몸 힘들어도 일하면 기분 좋아져

조해훈 승인 2025.01.21 10:29 의견 0

오늘은 2025년 1월 20일(月)이다. 절기상 대한(大寒)이다.

날씨가 그다지 춥지 않아 수돗가에서 낫을 갈아 차산(茶山)에 올라갔다. 이런저런 일이 많아 매일 차산에 올라가지는 못한다.

필자가 숫돌에 낫을 가는 모습을 셀카로 찍었다.

요즘 가물어 차산에 올라가는데 발 디딜 때마다 먼지가 올라와 코와 목을 자극했다. 오늘은 위쪽 차밭을 정리할 생각이다. 위쪽 차밭 입구에서 차밭을 오른쪽에 두고 위로 올라가는 길은 억새로 막혀 있다. 해마다 억새가 번져 장관을 이룬다. 차 농사짓는데 지장만 주지 않는다면 두고 감상하면 그런대로 멋지리라.

위쪽 차밭에 억새 천지다. 낫으로 저 억새를 다 잘라내야 한다. 사진= 조해훈

낫으로 길을 막고 있는 억새들을 좀 베어냈다. 벌써 이마에 땀이 나고 작업복 안에서는 쉰내가 진동한다. 낫으로 억새를 벤다는 게 만만하지 않다. 더군다나 왼손의 인대 상한 부분은 아직 완쾌되지 않아 역할을 완전히 하지 못한다. 왼손으로 억새를 비스듬히 잡고 오른손에 잡은 낫으로 자른다. 요즘 물기가 많이 말랐다지만 억새의 밑동을 잡고 자르는 일에 힘이 무척 든다. 한 무더기의 억새를 잘라내고 나면 허리를 한 번 펴고 잠시 쉬었다가 다른 억새 무더기를 잘라내야 한다.

필자가 차산에서 일 하다 셀카로 촬영했다. 뒤쪽으로 보이는 억새를 다 잘라내야 한다.

억새 몇 무더기를 자른 후 오른쪽 차밭으로 난 억새를 잘라낸다. 차밭 사이의 길(골)을 정리할 생각이다. 해마다 골을 정리하지만 1년 사이 차나무가 자라 메운다. 또 억새와 지난해 꺾지 못한 고사리가 자라 차나무를 덮었다. 골을 메운 차나무를 자르고, 사이사이에 난 억새를 자르고, 잡목 올라온 것들 자르고, 묵은 고사리 자르고, 가시덤불 자르다 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쉬지 않고 낫으로 잘라도 5m가량의 골을 정리하는데 1시간 이상 걸린다. 키 큰 억새는 3m가 넘는다. 고사리 역시 마찬가지다.

차나무 사이에도 억새가 많이 자라 엉망이다. 사진= 조해훈

억새와 묵은 고사리, 웃자란 차나무, 잡목 등을 베어내고 골을 정리한 모습. 사진= 조해훈

대충 1시간 간격으로 땅에 낫을 놓고 그 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는다. 좀 쉬어야 한다. 땀도 닦아야 하고 허리가 아프니 쉴 수밖에 없다. 1년 새 삐죽하게 자란 차나무 가지도 잘라준다. 차나무 가지를 자를 때는 ‘녹색의 내음’(?)이랄까, 기분 좋은 차나무 특유의 내음이 진하게 난다. 두세 시간 이것저것 자르다 보니 낫이 무디어진다는 걸 느낀다. 하루 종일 차산에서 일을 하려면 적어도 낫을 세 자루 정도는 갖고 와야 한다. 한 자루만 갈아서 들고 올라왔다. 낫의 날이 무디어지면 더 힘들다. 그만큼 손목에 힘이 더 들어간다.

차밭에서 베 가쪽에 쌓아놓은 억새 등의 무더기. 사진= 조해훈

차밭 가에 잘라낸 억새 등을 모았다. 몇 시간 자른 걸 갖다 놓으니 수북하다. 차밭 사이의 골을 정리하기 전의 모습과 정리한 모습을 보면 확연히 다르다. 필자가 봐도 깔끔하다. 마치 머리카락을 제때 깎지 않아 봉두난발처럼 하고 있다가 이발소에서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한 것 같다. 왼쪽 손모가지가 심하게 아프다.

원두막 있는 쪽으로 만들어놓은 골에도 정리를 대충 했다. 원두막 뒤쪽에서 차나무를 많이 자르고 나무 계단을 통해 올랐다. 계단 밑에 몇 년 전 심어놓은 삼지닥나무가 제법 많이 자라 거추장스럽다. 계단 밑에서 차밭의 골을 따라 위로 올라갈 때도 지장이 있다. 일부러 심은 걸 지금 와서 잘라낼 수 없다. 일단 올해까지는 삼지닥나무를 두고 볼 생각이다.

원두막 테이블에 장갑을 벗어놓고 낫을 얹어놓은 후 의자에 앉았다. 저 아래 용강마을에 집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 여기서 보니 산비탈에 마을이 형성돼 있다. 바로 아래 차밭의 매화나무들이 가지마다 봉오리를 맺고 있다. 다음 달부터 성질 급한 녀석부터 꽃을 피우리라. 잠시 원두막에 앉아 풍경을 보다가 다시 낫을 들고 차밭으로 내려갔다. 또 골 정리를 한다. 골 작업을 하는 것은 바로 차밭을 정리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오는 4월부터 찻잎을 따기에 수월하다. 또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고사리를 꺾거나, 찻잎을 따러 오더라도 차밭 정리를 해 놓아야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올해 9년째 차산 관리를 한다. 그러다 보니 발목이 좋지 않다. 차산이 가팔라 낫질을 한다고 몸을 경사지게 한 채 발목에 힘을 주어서 그런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 초까지 45일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발목이 아파 애를 먹었다. 차산에서 발목에 무리가 가도록 일을 해서이다.

하루 낫질을 해봐야 표시가 거의 나지 않는다. 4월에 찻잎을 수확할 때까지 부지런히 해야 겨우 마무리 한다. 찻잎 수확하는 건 둘째 문제다. 지인들이 가끔 “차 농사를 지어 돈이 되느냐?”고 묻는다. 필자는 “마이너스입니다.”라고 답한다. 그 말이 사실이다. 병원비가 많이 들어간다. 대신에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좋은 차를 마신다는 보람으로 농사를 짓는다.

원두막에서 바라보는 용강마을. 필자가 사는 목압마을 건너편 마을이다. 해가 져 어둑해지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6시쯤 되니 어둑하다. 다행히 오늘은 멧돼지가 없다. 필자가 일하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아니면 작업복 위에 입은 진한 주황색 옷을 멧돼지들이 보고 사람이 있는지 알아채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멧돼지가 나타나지 않으니 좋다. 슬슬 정리를 하고 차산에서 내려간다. 꼬불꼬불 오솔길이지만 하도 많이 다녀서 눈 감고도 다닐 정도이다. 마을로 내려오니 껌껌하다. 가로등 불이 훤하다. 낫을 들고 뒷짐을 진 채 집으로 간다. 누가 보더라도 영락없는 산골 어중간한 늙은이다. 몸은 힘들어도 차산에서 일을 하고 내려오면 항상 그렇듯 기분이 좋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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