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22. 갈수록 태산 오리농장(4)
집에 도착해 세수를 하자말자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는 영순씨의 말에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소파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보소. 나는 아이들 집에 먼저 가요. 당신은 국하고 밥 퍼서 식사하고 오늘 하루는 쉬소. 한 이틀 쉬고 일요일 날 나 하고 같이 가보든지.”
아직도 몸이 녹작지근해 일어날 엄두를 못 내는 열찬씨에게 한 마디를 던지고 나가자 휴대폰을 당겨 시간을 보던 열찬씨가
(...!)
황급히 일어나 옷을 걸치고 화장실을 향했다. 대충 일을 보고 세수를 하고 나온 그는 김치를 꺼내고 국을 덥히다 등산용 도시락을 꺼내 밥을 담으며 국에 만 밥을 후루룩 거리며 비우고는 커다란 찬 통 하나에 김장김치와 시금치나물을 담고 작은 통에 양념장과 젓갈을 담고 소주 두병을 꺼내 배낭에 담았다. 시계를 보니 여섯 시 정각. 뛰다 시피 내려가 수영아파트 앞에서 63번을 타며 일곱 시 20분에 청강리의 180번 버스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은 63번 마저도 일찍 도착해 아직 정체가 시작되지 않은 도로를 논스톱으로 달려 일곱 시 조금 넘어 청강리에 도착하고 여덟시 반쯤에 오리의 농장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사흘 동안 여남은 평의 밭을 갈아 아쉬운 대로 상추와 쑥갓 씨를 뿌렸다. 영순씨와 같이 밭에 가기로 한 일요일 아침부터 비가 뿌려 일단 성당의 11시 미사를 보고 오후에 날이 개이면 밭에 가기로 했는데
“보소. 비가 와서 밭은 안 되겠고 점심이나 먹으러 갑시다. 10분 후에 아파트 뒤 삼거리에 나오소.”
해서 옷을 갈아입고 나갔는데
“헤이, 갑장 제부!”
창문을 열고 미혜씨가 소리치더니
“요새 밭 뛰진다고 얼굴이 반쪽이네. 갑시다. 이 처형이 소고기 사주께.”
하고 웃었다. 눈앞에 오리의 농장이 훤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월요일부터 날이 개어 또 부지런히 밭을 일구었다. 이제 요령이 생겨 점점 진도가 늘어나 가로 15미터, 새로 12미터 한 50평 제법 넓은 밭이 되었다. 위쪽과 아래쪽 비슷한 거리의 두 라디오방송 중에 자기가 듣고 싶은 것 하나에 집중하는 요령도 생겼다. 그리고 차를 타고 지나가거나 걸어 다니는 사람, 심지어 저 뒤쪽의 밭이나 가건물에서도 수많은 눈들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핀다는 것을 감지하고 오줌이 마려우면 저 아래 닭 키우는 집의 담장까지 갔다 오며 부지런히 땅을 일구었다. 하루는 수도에 물이 안 나와 목은 타고 돌아갈 때 세수마저 할 수 없을 것 같아 전전긍긍하는데
“저, 어르신”
대문 앞에 포터차를 세우고 웬 사내하나가 어르신을 찾는데 이마가 훤하게 벗어져 열찬씨가 도로 어르신이라 부르고 싶은데
“나이 많은 분이 고생 많지요? 저는 저 위에 배 밭하는 조아무갭니다.”
아주 공손히 인사를 해
“무슨 어르신씩이나?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요?”
“머리가 벗어져서 그렇지 아직 환갑전입니다. 실례지만 어르신은요?”
“나도 머리가 쉬어서 그렇지 아직 60대중반입니다.”
하고 악수를 하고 나서
“우짠 일로?”
하고 바라보니
“어르신이 하도 장해서 말입니다.”
“예. 우리는 어르신 제수씨 되는 윤여사한테서 어르신이 고위공직자에 시인이란 이야기를 듣고 한나절도 못 버티고 가실 줄 알았지요.”
“아아, 우리 제수씨가?”
그 제서야 윤여사의 젊은 남편이 마침 같은 이씨라 남들에게 먼 친척 시아주버니로 하기로 한 약속이 생각해 내는데
“그런데 벌써 일주일이 넘고 이렇게 넓은 밭을 갈아 씨까지 뿌리다니 말입니다.”
“뭐 하다 보니 그렇지요.”
“사실 이 바닥 사람들 그러니까 엊그제 두 노인하고 저 하고 저 밑에 집 KT 강사장하고 불루베리 정사장하고 양계장에 장씨형제하고 저랑 7명이 내기를 맸는데 말입니다.”
“내기라니요?”
“어르신이 사흘도 못 버티고 나갈 것이다, 하고 쭈욱 견딜 것이라고 두 팀으로 나눠서 말입니다.”
“왜요?”
“전부터 윤여사 아는 사람들이 밭을 개간하러 7,8명이 드나들었는데 그중 제일 오래 버틴 사람이 이틀을 견딘 사람이지요. 볕도 뜨겁고 칡넝쿨도 많은데다 돌과 풀뿌리가 많아 보통 한 나절 아니면 하루에 다 나가떨어졌는데 근 10년 동안 그 사람들이 판 흔적이 한 서너 평이나 될까?”
“그래서 내가 일주일을 버텨서 신기하다는 말입니까?”
“예. 모두 못 버틴다고 하고 KT 강사장하고 저하고 둘은 어쩌면 버틸 것이라고 반대에 걸었는데 우리가 이겼지요.”
“그래 걸기는 무얼 걸었는데요?”
“막걸리 다섯 통.”
“이런? 내가 막걸리 다섯 통 짜리 내기감이란 말이요?”
“하하. 죄송합니다.”
하고 둘이 씩 마주보고 웃는데
“참, 물탱크에 물이 안 나오지요?”
“예. 그런데요.”
“저랑 우리 막으로 가십시다. 제가 설명해드릴 게요.”
하며 자신의 차에 타라고 해서
“좀 있으면 버스시간인데...”
망설이자
“집이 연산동이라던데 오늘은 제가 연산동 버스 타는 데까지 모시지요.”
하고 차를 태워 한참을 달려 배 밭 앞에 차를 세우고
“저는 온천장에서 재활용센터를 하는데 하루는 고향친구 하나가 자기 주말농장에 구경 가자고 해서 데리고 와 닭 한 마리 삶아 소주 한잔 먹이고는 일주일 뒤에 자기는 충청도 자기고향 부모님 모시러 간다고 자기 배 밭을 좀 맡아달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배 농사를 짓다 어차피 손댄 김에 땅도 사고 저렇게 집도 짓고 지하수도 개발하고 이렇게 지내고 있지요.”
“그래요? 저 원두막이 백만 불짜립니다.”
“예. 처음에는 나무위에서 낮잠이나 자려고 송판쪼가리 얹다가 점점 일이 커져 마침내 땅에서 부터 기초를 하고 사다리로 올라가는 원두막이 되었지요.”
“예. 멋진 수상가옥, 그러니까 나무 수(樹)자 수상(樹上)가옥입니다. 보르네오섬이나 스마트라에 있는 것처럼.”
“예. 한여름에 낮잠 자는 재미가 좋지요.”
하고는 손짓으로 별도 칸막이가 된 창고 문을 열고
“이 밑에 이 골짝 사람이 먹는 지하수로 사실은 KT 강사장하고 저 하고 둘이 개발해서 모터 돌리는 전기료나 수리비만 분담하고 같이 다 나눠먹는데 어제 그 바짝 마른 영감님이 문제지요.”
“...”
“공동경비 5천원을 내라고 하면 죽을상을 하면서 아래쪽 매실 밭하고 새 키우는 집에 물 쓴다고 날마다 밸브를 잠가서 말입니다. 사실 어제 오후에 그 영감님이 물을 잠가서 어르신 수도에 물이 안 나온 것입니다.”
“저런?”
“젊을 때 못골시장인가 어데서 참기름 집을 해서 상가건물도 있고 자식도 다 잘된 부자영감인데 어떻게 그렇게 구두쇠에 심술이 많은지, 같이 다니는 땅딸막한 노인이 교육자출신으로 고향친구인데 아무리 타일러도 천성을 못 고친답니다.”
“그렇군요.”
“자. 이제 KT 강사장 농장으로 가십시다. 내기에서 딴 막걸리를 마셔야지요.”
하고 다시 차를 태워 언덕배기를 돌아가니 열찬씨 밭 바로 뒤쪽의 두 농막 중 마지막 농막 앞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퉁퉁한 몸매와 후덕한 얼굴의 사내가 악수를 청하는 등 뒤에서 역시 사람 좋아 보이는 부인이 배시시 웃어보였다. 열찬씨네 밭에서 쳐다보면 물탱크 뒤쪽 한 7,80미터 뒤에 숙소를 겸한 농막이 하나 있고 그 아래쪽 7,80미터 쪽에 또 하나의 농막이 있는데 위에 것이 심술궂은 참기름영감의 것이고 아래 것은 KT 강사장의 것인 모양이었다. 아래쪽에서 쳐다보는 단순한 모습과 달리 방과 부엌, 창고가 있고 목재난로와 평상이 놓인 휴식공간까지 있었다.
“자, 한잔 하시지요.”
열찬씨가 건네준 명함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강사장이 술잔을 건네는데
“맛이 있을라나?”
부인이 오징어무침과 미나리생체를 내오더니
“요건 첫물 정구진데 양이 쪼깨뿐이니 맛이나 보이소.”
사위도 안 준다는 정구지를 한 줌 들고 와 상위에 놓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막걸리를 마시는데 강사장의 부인이 힐끗힐끗 열찬씨를 쳐다보며 무어라 말을 붙일 듯 말듯 망설이자
“아주머니, 왜 그러시오? 영감님 햇 정구지 자시니까 기대가 커서 그렇소?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고 갈 모양이지요?”
하며 조사장이 비시시 웃자
“아니 그게 아니라...”
하고 또 함빡 웃음을 터뜨리더니
“어제 모처럼 기름집 할머니하고 불루베리집 새댁까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하는 말이 말입니다.”
하고는 또 배시시 웃기만 하는지라
“아따, 사람 감질나서 죽을 지경이구먼.”
조 사장이 재촉하자
“저, 뭐이라. 매실밭집 밭을 일구는 머리 허연 할아버지가 아무래도 변강쇠 같다고 난리가 났지요.”
“변강쇠?”
“예. 지금까지 해마다 한두 명씩 밭을 일구러 도전하다 4,50대 젊은이도 이틀이 넘어가는 사람이 없었는데 저렇게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일주일이 넘도록 피로한 기색도 없이 끈질기게 잘도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지 몰라도 그 댁 사모님은 참 좋겠다고 뭐 그런 이야기지요.”
하자 동시에 모두들 자기를 쳐다보는지라
(...!)
안 그래도 어안이 벙벙했던 열찬씨가
“사실 저는 공무원생활을 40년이나 하며 날마다 술에 절여 살아 그 술기를 뺀다고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땀을 흘린답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만 진짜 변강쇠가 들으면 어디 비교할 데가 없어서 이런 사람하고 비교하느냐고 화를 버럭 낼 것입니다.”
하자
“아닙니다. 머리가 하얗게 쉬어도 학처럼 깨끗하게 쉰 사람은 체력도 정신력도 다 좋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모자를 벗고 보름달보다도 더 둥근 이마에 땀을 닦으며 조사장도 끼어드는데
“사실 저는 언양이란 곳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땅의 소중함이나 땅에 대한 집착을 느끼며 살았고 지금은 이 땅에서 곡식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죽기 전에 나름 한 몇 백 평은 땅을 일구어 곡식을 심게 하는 것이 도리랄까, 양심이라 생각하고 그냥 한번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밭을 왜 일구느냐 보다 어떻게 그렇게 줄기차게 일하는가가 신기하단 말이지요.”
“아, 그건 직장에서 하도 험한 꼴을 많이 당해. 내가 이 수모나 고생을 못 이기면 죽는다던 그 압박감이 생각나서 그 때 그렇게도 모질게 날 핍박했던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악으로 괭이질을 하는 것이지요.”
“...”
이미 막걸리 세 통이 비고 오징어 회 접시도 비어
“두 분은 첫물 정구지효과를 보시려면 여기서 주무시고 오실 거고 우리는 내려가십시다.”
하고 밖으로 나와
“막걸리를 꽤나 마셨는데 운전이 되겠습니까?”
“마시는 척 하면서 주로 이야기를 해서 한 사발 정도밖에 안 마셨어요. 이 정도면 까딱없습니다.”
하고 산등성이를 빙글 돌아 까치집원두막이 매달린 배 밭과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텅 빈 원룸건물을 지나 포장도로를 나와 금방 180버스정류소가 나타나자
“여기 대 주세요. 한 30분 기다리면 차시간이 될 겁니다.”
하는데
“댁이 연산동이라면서요. 제가 버스 타는 데까지 모셔드리지요.”
하며 월내시내를 지나고 장안읍을 지나는데 따르릉 휴대폰이 울리며 서원조회장이 오늘 사무실에서 고스톱을 벌이는데 안 바쁘면 같이 저녁도 먹을 겸 들리라는 이야기라
“기왕 신세지는 것 연산로터리 방향이면 좋겠는데요.”
하자
“오케이!”
4거리에서 곰내터널방향으로 가려던 방향을 급히 좌회전으로 바꾸어 냅다 기장체육관 앞까지 달리더니 반송고개로 좌회전 반송의 189번 종점에 이르자
“여기서 타면 바로 연산로터리로 갑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차를 세우며 사람 좋게 웃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