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심청이

이 혜 선

엄마, 이제 내 얼굴 잘 보이지요?/엄마 눈 고치려고 평생을 바쳐/오늘에야 로돕신*의 구조를 알아냈어요
여섯 살이 예순세 살 되도록 하루도 엄마를 잊어본 적 없어요

그날, 가을 햇살 쨍하니 내리쬐는 타작마당, 신나는 잔칫날
나락 알갱이에 맞아서 엄마가 얼굴 싸매고 주저앉은 뒤
갖은 약도 효험 없이 단풍잎 같은 제 손을 놓고 떠나가신 뒤
세상의 모든 빛들이 일시에 내게 달려들었죠
(네가 해내야지, 엄마 눈을 뜨게 해야지!)

빛과 모양을 뇌에 전해 주는 로돕신/ 찰나에 다섯 가지 다른 구조로 바뀌며/ 망막신호를 뇌에 전해주는 단백질들/ 제가 보내는 이 간절한 사랑의 전파가/ 언제쯤이면 엄마 뇌에 환하게 닿을 수 있나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엄마 아들은/ 지옥도 마다 않으리라 날마다 실험실에서 지새우며/ 이제야 엄마 눈 띄울 심청이가 됐는데/ 엄마는 어디 있나요?

세상의 모든 엄마,/ 춥고 깜깜한 동굴 속에서 더듬거리지 말고
제 손을 잡으셔요/ 환히 웃는 그 모습 모두 보고 싶어요
(이 아들이 세상을 밝히는 심청이가 될게요)

.* 전북대 최희욱 교수가 ‘망막에 맺힌 빛의 신호를 전하는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밝혀냈다. 2013. 3. 13. 조선일보에 연구성과와 사연이 실렸다.)

- 이혜선 시집 시간의 독법, 지성의 샘

시 해설

심청전을 통해 장님인 심봉사와 효녀 심청 이야기는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다. 이 시는 ‘아들 심청이’라는 제목으로 봐도 짐작이 가겠지만 과학의 발전으로 장님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활동하는 과정을 보게 되며 과학적 요소로 시를 쓴 것이다.

아들이 6세 때 사고로 앞을 못 보게 된 어머니만큼의 한을 안고 연구에 몰두한 아들이 예순이 넘어서 연구 성과를 가지게 되었다. 전북대 최희욱 교수가 ‘망막에 맺힌 빛의 신호를 전하는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밝혀낸 것이다. 빛과 모양을 뇌에 전해 주는 로돕신이라는 단백질 구조를 찾아낸 것이다. 여러 가지 특성의 단백질을 가지고 어떤 과학자들은 단백질에 대한 반응(전달)이 없으면 사망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망막신호를 뇌에 전달하는 것도 단백질이다.

‘이 간절한 사랑의 전파가 언제쯤이면 엄마 뇌에 환하게 닿을 수 있나요?’ 시인은 과학자의 마음을 살폈다. ‘날마다 실험실에서 지새우며 이제야 엄마 눈 띄울 심청이가 됐는데 엄마는 어디 있나요?’ 아들의 한을 시로 탄생시킨다. 때늦은 효심이라 할 수는 없다. 피를 삼키는 노력의 결과를 찾는 데에 그만큼 시간이 걸린 것이며, 그 어머니는 아니더라고 세상의 시각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아들 심청이가 나타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 춥고 깜깜한 동굴 속에서 더듬거리지 말고
제 손을 잡으셔요, 환히 웃는 그 모습 모두 보고 싶어요’라고 시인이 대신 전하는 희망으로 세상이 밝아진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