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물권색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저곳의 다섯 공리公理 axiom>

1. 일찍 들어오고 늦게 들어오고 선후배 없이 다 똑같은 동등한 존재다. 존대말 없이 서로 말을 터도 된다.

2. 살아생전에 언제 어디서 살았던 다른 지역에 대해 대충은 안다. 시공간 초월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다.

3. 이승에서의 집착을 다 비워 버려야 하지만 아직 미련이 있다. 물권색 욕망이 강한 인간의 관성 때문이다.

4. 한 방에서 이성끼리 대화하다 방이 바뀌며 이성 상대가 바뀐다. 덕분에 저곳에서의 생기가 은근히 살아난다.

5. 저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최종 정착지가 정해진다. 그러니 저곳은 중간 경유지가 된다.

41. 갑철과 진숙

호모 사피엔스 인류사에서 나만한 풍운아는 아직도 없어.

2500년 전 난 당시 최고 문명도시이던 아테네와 스파르타

그리고 최대제국이던 페르시아를 안방처럼 누비고 다녔어

게다가 나만큼 풍채좋고 인물좋은 미남은 없었어.

여자를 홀리는 실력에서 날 따라올 자 없을 정도야.

집안도 좋았고 머리도 좋았고 야망도 있었고 배짱도 있었지.

그런데 난 교만 거만 오만 자만하며 기고만장했지.

그러니 늘 나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끊이질 않았어.

결국 난 친구들과 술 먹고 놀다 신전에서 실수로 생긴

진짜 별거 아닌 일로 신성모독죄를 뒤집어 쓰게 되었지.

누구라도 나같은 처지에선 도망칠 수 밖에 없었을 거야.

젊잖케 말하면 망명인데 거기서도 성적 매력을 발산했지.

아뿔싸! 왕비를 덜컥 임신시켰으니 왕이 날 가만히 두겠어.

수천 키로 떨어진 페르시아로 또 도망갈 수 밖에 없었지.

그래도 난 내 조국 아테네로 돌아가고 싶었어.

어찌해서 돌아는 갔는데 돌아가지 말았어야 했어.

별 요상한 죄목으로 나의 스승 테스형을 죽인 놈들이

나를 그냥 놔둘 리 없었으니 난 그 놈들 손에 죽었어.

지들이 통치를 개떡같이 해 나라를 말아 먹었으면서도

난 영원히 최고의 매국노 배신자가 되었으니 말도 안되.

아무리 내 잘못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 풍운아 한을 풀어줘.

난 살아생전에 그야말로 팔팔뛰는 에너지 떵어리였어.

아프리카 땅에서 나만큼 당당하게 산 영광의 여인은 없어.

우리나라를 쳐들어온 얼굴허연 놈들한테 난 당하지 않았어.

힘있는 여왕으로 그 놈들과 전략적 게릴라전을 이끌었지.

난 용기 지략 완력 근력 통솔력 지도력 모든 걸 갖추었지.

그러면서도 악랄한 백인 놈들과 타협하며 수용할 건 했지.

평화롭게 살던 원주민에게 그토록 악랄했던 대항해 시대 때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에서 흑인과 황인은 다 나가 떨어졌어.

그토록 강한 백인 놈들과 싸워서 이긴 지도자는 나 밖에 없어.

그래서 나는 내 조국에서 독립영웅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어.

내가 만일 환생한다면 난 정말로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자야.

그런데 나한테 오명이 하나 있는데 좀 챙피하고 부끄러워.

난 백인 남자놈들과 싸우는데 에너지 떵어리였던 만큼

남자들과 성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에너지 떵어리였어.

성적으로 너무나도 왕성한 정력을 난 주체하지 못했지.

성적 절정 상태에서 나는 남자를 좀 물어 뜯기도 했지.

그러다 복상사한 사내가 있었는데 그 사건이 부풀려졌어.

내가 인육을 먹는 식인녀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지.

특히 나한테 호되게 당한 백인놈들이 소문을 퍼트렸어.

그건 헛소문이야. 내가 죽고난 여기서 뭔 거짓말을 하겠어.

나는 우리나라를 구한 영광의 삶에 대해 자부해.

섹스 중 남자를 죽인 오욕의 삶에 관해 회개해.

근데, 나 죽고 난 후 병신같은 놈들이 지들끼리 싸우다

우리나라 땅도 흑인 노예공급처가 되고마니 한탄할 일이야.

박기철 교수

<전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