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22. 갈수록 태산 오리농장(1)
탄식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금방 대보름이 지나고 음력 2월 초하루 영등까지 지나 아파트화단의 느티나무와 모과나무의 가지가 점점 투명하게 빛깔이 엷어지고 벚나무의 꽃 몽우리가 잡히고 수영강, 온천천변의 잔디밭과 강둑에 연두 빛 봄볕이 묻어나와 날로 파랗게 짙어져가니 열찬씨는 물론 영순씨의 조바심이 점점 옥조여왔다.
전에 물망골밭을 소개해준 <연동회>의 정씨네 딸 광호엄마와 계모임을 하면서
“언니, 절딴났다. 우리가 밭을 뺐기고 물망골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와? 교장선생이랑 싸웠나?”
“응. 사람들이 얼마나 욕심이 많고 인색하며 심청궂던지. 우리 영감이 참다참다 싸움이 났지.”
“아는 사람들은 다 위태위태하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보다 잘 견딘다고 했는데 기어이 그렇게 됐구나. 하긴 교장선생마누라의 심술을 견딜 사람은 조선천지에 없지. 오죽하면 옛날 두실마을에서 같이 살던 사람들은 입을 섞지 않을까?”
“그랬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는 언니네 밭을 버리고 선뜻 교장선생 밭으로 옮겨서 말이야.”
“그럼 우짜노? 또 남의 밭을 빌릴 건가?”
“아니. 또 다시 쫓겨나가는 일은 안 당해야지. 돈이 자랠 줄은 모르지만 한 1,2백 평을 샀으면 해.”
“그러면 한번 알아보자. 우리 영감이 농사짓는 철마면 이곡리 쪽에 고만한 땅이 있을라나?”
하고 계를 마친 뒤 열찬씨에게
“여보, 이참에 쪼깨는 땅을 하나 삽시다. 우리도 내 땅이라고 울타리 치고 농막도 짓고 외고 펴고 농사짓게.”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은 했지. 그런데 우선 요즘의 비싼 땅값에 부산근교에는 그런 땅이 없을 기고 그렇다면 연고가 있는 고향 언양의 장촌이나 명촌쪽으로 가야 되는데 거기는 이미 도시화가 되어 대도시 못잖게 땅값이 비싸니 말이야.”
“그래서 기장 철마쯤에 한 백여 평 땅을 사서 가장자리에 농막을 짓고 주말농장사마 한 백 평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지.”
“땅값이 비싸서 문제지. 당신 통장에 저축이 얼마나 있나?”
“한 1억.”
“그 돈으로 평당 한 50만원 하는 땅을 한 150평 정도 사고 나머지로 세금을 내고 농막을 지으면 딱 되겠네만 그런 땅이 있겠나?”
“글쎄. 찾아봐야지.”
하고 이튿날 계순씨를 태우고 이곡리로 갔다. 면사무소가 있는 철마의 중심지에서 좁은 골짝을 한참으로 내려가다
“부산광역시에 이래 후미진 곳이 다 있나? 버스는 댕기나?”
기가 찬 열찬씨가 혀를 끌끌 차는데
“우리 영감이 운전을 못 해 하루 여섯 번 다니는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잘만 다닌답니다.”
하고 작은 마을 앞에서 제법 넓은 개울을 지나 밭둑에 차를 세우고 들길을 한참이나 걸어 다시 산비탈을 또 한참 올라
“영감, 있어요? 손님 모시고 왔어요.”
소리치자 어쩐지 숲 사이에 대충대충 개간한 밭과 엉성한 화단과 연못과 방금 쓰러질 듯한 집 사이에서
“음, 왔는가?”
일흔에 가까운 키가 작은 사내 하나가 러닝바람으로 나오며
“신아무갭니다.”
손을 내밀었다.
“많이 변하셨네요. 전에 서대신동에서 사진관과 현상소를 할 때 제가 서구청 문화관광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자주 들렸지요. 구청 사진사 김종현씨 잘 알지요?”
“아, 남해사람 노총각 김종현씨? 대신동 골목시장에서 찌짐 놓고 막걸리 잔이나 마셨지요.”
하며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으니 막걸리라도 한 잔...”
하는데 두 여인의 눈빛이 동시에 사나워지며
“우선 땅을 둘러보고 나서 술을 묵든 밥을 묵든.”
몸이 가벼운 계순씨가 벌서 종이컵에 커피를 타면서 남편을 흘겨보았다. “내가 미리 손님모시고 온다 했으니 청소나 좀 하지?”
“뭐. 있는 데로 보이는 거지.”
부부의 대화를 들으며 돌아보니 과연 귀신이라도 나올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리산 아래 함양인가 어디의 부잣집 장손으로 역시 구서동 알부자의 막내딸과 결혼해 양가의 재산을 넉넉히 받은 부부는 단 한 번도 먹고사는데 어려움이 없이 월세가 꽤나 나오는 커다란 2층집에 살며 사진현상소를 하며 아무 어려움을 모르고 살다 두 아들이 모두 결혼해서 나가자 사업을 접고 재미사마 야산을 하나 사서 농사도 짓지만 광호아버지의 본래의 취미인 목공예를 하느라 창고가 달린 움막을 짓고 온갖 나무뿌리를 다 주어 와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어떤 것은 깎고 다듬어 기름을 칠해 전시를 하고 어떤 건 하다 던져버린 것이 움막은 물론 집 앞의 작은 채소밭과 몇 그루의 두릅나무와 엄나무 아래에까지 쌓여 쓰레기장을 방불했고 함부로 버린 막걸리 빈 통에서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내가 이래서 여게는 잘 오지도 않고 집에 온 영감이 샤워를 안 하면 방에도 못 들어오게 하지.”
부지런히 방을 치우고 나서 종이컵에 물을 붓기 시작했다. 커피를 한잔 씩 마치고
“자, 가십시다.”
하고 도로 언덕을 내려와 들길을 건너 세로로 길쭉하게 늘어선 세 동의 건물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자
“아하! 바로 여기로 구나.”
열찬씨의 표정이 금방 굳어졌다. 아까 올라올 때 세상에 어느 생각 없는 사람이 여기에 집을 다 지었을까? 이건 제대로 길도 없는 비뚜름한 언덕배기에 마당도 거의 없는 동남향도 아닌 어중간한 방향에 주말농장사마 집을 짓긴 했지만 손바닥만 한 텃밭에 제대로 곡식도 심지 않은 것은 물론 아직 찬바람이 쌩쌩 부는 개활지 언덕이 너무 추운지 사람그림자 하나가 보이지 않던 곳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1,200평을 여덟 필지로 나누어 다섯 필지가 팔려 세 집이 들어서고 아직 안 팔린 땅이 셋이 남았는데.”
광호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본 땅들은 비뚜름한데다 비탈까지 져서 축대를 쌓지 않고는 도무지 집을 짓고 밭을 일굴 처지가 아니었다. 이미 속으로 안 되겠다 싶으면서도
“여기는 한 평에 얼마나 해요?”
“땅이 반듯해 지금 집이 들어선 곳은 90만원씩 받았는데 남은 곳은 7,80만원에 판대요.”
(이 형편없는 땅을 2억이나 주고 살 바보가 어디 있나?)
하고 고개를 흔드는데
“철마면 아니라 부산시내 어디라도 땅 한 평에 백만 원 안쪽 주고 살 데는 없을 걸.”
시큰둥한 반응에 광호아빠도 김이 새는 모양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우선 필지 전체가 북쪽으로 열린 땅이고 경사가 심해 농사를 짓기 어려워 도저히 우리 하고는 안 맞네요. 또 다른 데는 없나요?”
“있긴 있지만 대부분 평수가 500평이 넘는데다 평당 한 150에서 200만 원 정도 나가니 한 십억은 쥐어야 넘볼 수 있어요,”
미리 사정을 들은 광호아버지가 엄두도 내지 말라는 투로 못을 박으며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농막에 가서 막걸리나 한 잔 합시다.”
하는 걸
“술은 무슨 술? 어디 가서 칼국수라도 한 그릇 합시다.”
광호엄마를 따라 산을 내려왔다.
“큰일 났네! 황서방네 밭이라도 우선 못 구하면 동생이 엄청 짜 붙일 텐데.”
시골칼국수가 뭐 별 거 있으라며 먹다 깜짝 놀랄 만큼 맛이 있어 땅 사러 온 생각은 잊어버리고
(아이고, 배풍냥하네. 진장만디 조부자집이 안 부럽네.)
어린 시절 늘 굶주린 마을사람들이 모처럼 포식을 하면 복숭아밭이 있는 진장만디 조두천씨 과수원, 지금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목사가 된 조용기목사네의 과수원을 쳐다보며 하던 말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는 열찬씨에게
“당신은 걱정도 안 되나? 벌써 머구가 올라오고 상추를 심어야 할 철인데.”
영순씨가 눈을 흘겨도 모르는 척 했다. 같이 막걸리를 한 잔 못 해서 못내 아쉬워하는 광호아빠와 엄마를 구서동집에 내려다 주고 다시 도시고속도로에 차를 얹어 연제예식장 옆으로 빠져나오는데 영순씨의 전화가 울리더니
“아. 언니!”
하고 한참이나 뭐라고 주고받던 영순씨가
“언니 미안해서 우짜노? 형부한테 고맙다고 전하소.”
하고 만면에 웃음을 띠우더니
“황서방네 밭 해결났다!”
그것 보라는 듯 어깨를 쫙 펴 보이는데
“어떻게?”
“계순이 언니가 자기 정구지 심어먹던 정씨문중 밭 그거를 준다더라.”
“그거 손바닥만 하던데. 한 20평이나 될까?”
“20평이고 말고 거기다 급한 대로 황서방 짐, 우리 짐을 옮겨놓을 수 있으니 말이야.”
“그렇구나. 당신 욕 받네.”
“내가 꼭 자랑하려고 하는 말인데 당신은 주로 술친구를 사귀어 급할 때 별 도움이 안 되는데 우리 여자들은 한번 사귀면 남이 어려울 때 정말 자기 일처럼 돕는단 말이야.”
“...”
[그림=서상균]
그날 저녁이었다. 14층 호영이할머니의 전화가 와서
“영서야, 내일 일요일이니까 쉬제?”
“예. 쉬는데요.”
“할아버지도 별일 없고?”
“그렇지요. 뭐. 백수6년차에.”
“그럼 같이 농사지을 땅을 보러갈랑가?”
“농사지을 땅이라니? 형님, 그게 무슨 말이요?”
“글쎄. 만장같이 너른 땅이 있기는 한데 그게 말이야.”
“땅이 있으면 되지 그게 말이라니요?”
“내 단무지 담으면서 영서할아버지가 농사지을 땅이 없어 고민한단 소리를 듣고 그 양심 바른 사람이 생 속을 얼마나 앓을까 싶어 진작 소개하고 싶었는데 사실은...”
“사실은?”
“그 땅이 좀 먼데다 또 주인이 보통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서.”
“아니 멀면 얼마나 멀고 까다로우면 얼마나 까다로워서? 우리 영감도 나름 세상살이를 많이 해서 그런 눈치가 없을 사람도 아니고.”
“땅이 먼 거야 자동차 있으니 그게 그거지. 그런데 단순히 까다롭다고 하기 보다는 또...”
“예? 소개하겠단 말잉교, 안 한단 말잉교?”
“아무튼 평범하지도 않고 만만하지도 않고 무지 복잡하단 말이지. 그렇지만 말이 나왔으니까 일단은 연결해야지. 내일 같이 현장에서 지주를 만나보도록 하지. 아침 열 시에 출발합시다.”
“예.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고
“오늘은 참 희한한 날이네. 두 군데나 땅이 나타나 묵은 고민이 단번에 해결되네.”
영순씨가 쾌재를 부르는데
“또 당신친구들은 진실하고 내 친구들은 술 마실 때 말고는 진실한 친구가 없단 말이지?”
“뭐, 꼭 그렇다기보다는...”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땅은 어딘지 그래 멀다고 하는고?”
“물어볼까? 그 집에는 아홉시 뉴스도 안 보고 자는 집인데.”
시계를 보니 아직 아홉시가 멀었다. 전화를 걸어본 영순씨가
“기장 월내라 카네.”
“월내면 많이도 머네. 우리가 진하해수욕장 갈 때 거치는 고리원전 있는 마을 아이가?”
“그러네. 멀기는 참 머네.”
“그래도 언양보다야 가깝겠지.”
하고 모처럼 편안하게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잠이 깬 열찬씨가 텔레비전 부스터에 나오는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반인데
“당신도 잠 깼나? 나는 이상하게 깊은 잠이 안 들고 밤새 자다, 깼다를 반복해서.”
“와? 벌써 월내 밭에 열무심고 토마토하고 가지 모종 옮기는 꿈을 꾸었나?”
“우째 그래 잘 아는데?”
“나는 울타리에 그물 치고 물도랑 내고 삽질을 한참이나 해서 상추 심고 쑥갓 심을 이랑 만들었다.”
“그래. 잘 되면 좋을 긴데.” “잘 되겠지. 내일 운전하기 힘들긴데 어서 가서 좀 더 자지.”
하고 각자 거실과 안방에서 누워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침밥을 먹은 뒤 호영이할머니를 만나
“고맙습니다. 드디어 이웃집 연상의 여인께서 이 연하의 남자에게 큰 거 한 건을 해주시는군요.”
“한건 해 주는지 아닌지는 현장을 보고 사람을 만나봐야 알 일이고 아무튼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 머리를 짤래짤래 흔들면서 글도 못 쓰면 우짜노 싶어서 말입니다.”
“예. 고맙심더. 그 때는 <머리를 짤래짤래 흔드는 것>이 아니라 <대가리 틀어 매고>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요.”
모처럼 유쾌하게 농담을 하며 출발하는데 부옇게 흐린 하늘에서 마침내 비가 뿌리자
“이거 큰일이네. 초행길에 길도 험한데 비까지 와서. 영서할매 살살 갑시다.”
하며 도시고속에 차를 얹어 오륜터널 못 미쳐서 오른쪽 회동동쪽으로 꺾어 개좌터널을 넘어 철마면이 나오자
“곰내터널 쪽으로 계속 전진해서 정관신도시 첫 길에서 우회전 하소.”
해서 또 한참을 달려 곰내터널을 벗어나 정관신도시가 나오자
“우회전 쪽 직진을 하다가 맨 끝에서 다리를 건너 롯데 아울렛쪽으로 또 우회전!”
“야, 구비구비 길도 머네.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따로 없네.”
“아울렛 지나서 3번 국도에서 좌회전, 다시 한참을 달려 장안사 입구 용소리 지나 언덕에서 메기탕집이 많은 쪽으로 오른쪽 옆구리를 째고...”
“형님 그 옆구리 째는 거는 어데서 배웠소?”
“영서할아버지가 철마 소고기집 찾는다면서 옆구리만 계속 째다가 못 찾았다면서.”
“저 양반이 말은 재밌게 잘 하지만 길눈이 봉사라서.”
여자 둘이 쿡쿡 웃더니
“옳지. 우측 새 길로 쭈욱 달리면 월내시내가 나오지.”
하고 숲 사이로 난 새 길을 한참 달리는데
“원 쪽은 전원주택단지로 이미 새 마을이 들어섰고 오른 쪽은 주택공사에서 수천 세대 아파틀 짓는다구먼. 좌우간 기장도 많이 변해. 우리도 제기나 돈이 있으면 땅을 좀 사놓는 건데. 저기 야구장 들어선 것 좀 보아.”
“무슨 중학교야구대회의 플래카드가 걸린 월내마을에 도착하자
“저기서 철로를 넘어 원전관사사이로 직진, 부산, 울산 경계안내판이 나오면 다시 좌회전.”
“아이구, 정신없어라. 머리 나쁜 사람 오지도 못 하겠다.”
“나중에 땅주인한테 주소를 알아서 아니나비 치면 되지.”
하고 부산, 울산경계지점에서 좌회전을 해서 원전숙소담장을 끼고 또 한참을 달려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 좌측엔 토취장이, 우측엔 갈대가 우거진 황무지를 바라보며 한참을 달리자 기다란 축사와 가축의 사료의 저장고이자 신선한 야초 엔실레이지를 김치처럼 보관하는 사일로우가 맵시 있게 매달린 목장이 나오자
“거긴 폐목장이야.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옆구리를 째고 올라가면 조그만 원룸건물이 나와. 거기서 다시 좌측으로 고갯길을 한참 달리면 펑퍼짐한 민둥산과 작은 평지로 이루어진 경작지대가 나타나는데 한가운데 넓은 평지가 바로 우리의 목적지야.”
해서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자갈을 깔기는 해도 여기저기 움푹 파인 비탈길에 비가 내려 누런 황토물이 흘러내리자
“야, 부산광역시에 이런 곳이 다 있나? 초보운전자들은 엄두도 못 내겠네.”
툴툴거리면서도 능숙하게 차를 몰아 또 한참을 지난 영순씨가
“형님, 여기요?”
“그래요. 차를 대소.”
하고 셋이 우산을 쓰고 내리니 비스듬한 언덕배기에 서너 채 농막이 보이고 그 중 하나는 높다란 소나무위에 까치 집 처럼 매달린 것도 보였다.
“여기야. 매실 밭을 포함해서 모두 1,200평인데 지금 600평 정도가 비어있지.”
하고 철주를 드문드문 박고 검정 그물로 씌운 밭을 가리키는데 넓고 시원해 올망졸망한 구서동 물만골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은?”
하는데 호영이할머니가 벌써 전화를 걸었는지
“우리는 이미 현장에 도착했는데 뭐 3거리에서 기다렸다고. 혹시 싶어서 라이트를 깜박거려도 보지도 않고 올라가더란 말이지.”
하고 전화를 끊더니
“금방 올라온대. 삼거리에서 기다렸나 봐.”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쏘나타승용차하나가 멎더니
“언니!”
중년여인하나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어머, 이모!”
영순씨가 반색을 하더니
“반여동이모, 부자이모!”
하며 서로 잡았다. 이미 잘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이어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내하나가 차에서 내리는데 이모란 여인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데
“제부, 인사하소. 내가 전에 가끔 이야기하던 공무원 높은 사람이자 시인인 영서 할아버지.”
하자
“이열찬입니다.”
“이삼성입니다.”
인사를 하고나자
“예까지 왔으니 밭을 한번 둘러보시겠습니까?”
물이 묻어 끼익 소리를 내는 무거운 철문을 여는 지주여인과 눈이 마주치자
(...!)
언제 한번 호영이할머니에게 화상을 입어 늦게 젊은 이혼남과 결혼한 성격이 좀 까다로운 여동생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을 떠올리는데
“농사를 지을 만한지 땅을 한번 둘러보시죠.”
해서 억새와 칡넝쿨이 이리저리 얽힌 밭으로 들어가 매실밭 경계를 따라 커다란 약통 같은 물탱크가 세워진 곳을 돌아 나오다 중간에 한 여남은 평 잡초가 벗겨지고 곡식을 심은 흔적이 있는 곳의 땅을 발로 후벼보고
“땅은 그리 나쁘지 않네. 돌도 없고.”
열찬씨가 좋다는 사인을 보내자
“곡식은 얼마든지 심으세요. 600평 다 개간해도 좋고 일부만 조그맣게 해도 좋고.”
여인이 씩 웃었다.
“예. 점심이나 먹으며 이야기하죠.”
또 한참이나 달려 철마면사무소에서 개울을 건너 아홉산 뒤쪽 언덕배기에 있는 <철마추어탕>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아까 사내가 준 명함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열찬씨가
“세무회계사무소에 다니시네. 그렇다면 세무공무원출신인데 혹시 김달수세무사나 강수혁세무사 아시나요?”
조기축구회 멤버로서 당시에 세무서에 다니다가 지금은 세무회계사무소를 운영하는 두 회원을 들먹이자
“김달수씨도 알지만 강수혁씨는 졸병시절 우리 계장님으로서...”
말끝을 흐리는 데
“지금 강수혁씨는 김해세무서장으로 계시는데 왜 같이 근무하지 않고?”
하다 영순씨의 눈길에서 경고신호를 발견하고 퍼뜩 멈추었다. 무슨 일인가로 중도에 사표를 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 것이었다.
“우리 영감이 워낙 농사짓기를 좋아하는데다 지금 땅이 급해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좀 멀기는 해도 땅을 빌리기는 하지요.”
“영순씨가 말을 꺼내자
“영서 할머니 사람 좋고 경우 바른 것이야 전부터 알고 또 영서할아버지도 대단한 관록에다 시인이시라니 기대와 호기심이 큽니다. 잘 해봅시다.”
여인 둘이 악수를 하자 사내 둘도 악수를 하는데
“어쭈, 내만 빼놓고!”
호영이할머니가 정색을 하더니
“아무튼 나중에 나보고 이렇다, 저렇다 말은 안 하기요”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자, 한잔 하십시다.”
깔끔한 외모와 달리 이 축축한 날 굳이 텁텁한 막걸리를 마시겠다는 사내와 또 굳이 제 성미대로 시원소주를 시킨 열찬씨가
“반갑습니다. 좋은 인연이 되기를!”
하며 음료수 컵을 든 여인네들 포함 다섯이 건배를 하고 식사를 하는데
“참, 미리 땅세를 내었으면 합니다. 저쪽에서는 한 50평에 6만원씩 주었는데 우선 한 20만원이라도 드렸으면...”
영순씨가 핸드백에서 돈을 꺼내 세는데
“무슨 말씀! 우리가 영서할머니에게 돈 받으려고 이리 하는 것 아닙니다. 워낙 우리 언니랑 흉금을 털어놓고 지내는 사이라 그렇지.”
여인이 손사래를 치며
“단지 바쁠 때 서로 돕고 지내는 걸 바랄 뿐이지요.”
“아, 거야 당연한 일이지요.”
열찬씨가 수긍하자 영순씨도 도로 팔을 거두고
“잘 부탁합니다.”
“아니, 우리가 부탁해야지요.”
화기애애하게 분위기가 익어 가는데 문득 영순씨가 옆구리를 지르는지라 열찬씨가 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을 건네주자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결재를 하고 왔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