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일 해맞이 [사진 = 박철]
새해가 오면 사람들은 으레 “새로 시작하자”고 말한다. 달력이 바뀌는 순간, 마치 삶도 함께 초기화될 수 있을 것처럼 기대한다. 그러나 조금만 정직해지면 우리는 알고 있다. 해는 바뀌어도 삶은 그대로이고,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해마다 새로움을 말한다. 완전히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달라지고 싶은 마음만은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움은 점점 어려운 과제가 된다. 젊은 날의 새로움이 ‘시작’의 문제였다면, 지금의 새로움은 ‘되돌아봄’의 문제에 가깝다. 이미 형성된 생각과 오래된 습관, 굳어진 판단과 경험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새롭게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새해는 설렘보다 체념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오기도 한다. 달력은 바뀌지만 삶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는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다.
그럴 때 떠오르는 말이 있다. 『대학(大學)』의 일일신(日日新), 일일신 우일신(又日新). 하루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이 말은 단번의 결단이나 극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다시 살피고, 조율하고, 갱신하라는 조용한 요청에 가깝다. 새해에 한 번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시간 속에서 새로움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이 말을 생각하다 보면 오래된 기억 하나가 자연스레 따라온다. 고등학교 시절, 조회 시간마다 마주했던 교훈이다. 그때 우리 학교 교훈이 “날로 새로워라”였다. 당시에는 그 문장이 그저 벽에 걸린 문구에 불과했다. 무엇을 어떻게 새롭게 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시험과 성적 앞에서 그 말은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 문장이 삶 전체를 향한 긴 호흡의 당부였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신영복 선생은 ‘새로움’을 다른 방식으로 말했다. 그는 『처음처럼』이라는 말로, 우리가 잃어버리기 쉬운 삶의 태도를 일깨웠다. 처음처럼 산다는 것은 미숙한 상태로 되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익숙함이 만들어낸 무감각, 반복이 낳은 둔함, 성공과 실패가 굳혀버린 마음의 굴곡을 다시 풀어내자는 요청에 가깝다. 처음의 마음이란 설렘이 아니라, 관계 앞에서 함부로 단정하지 않던 태도, 말 한마디를 건네기 전 잠시 머뭇거리던 조심스러움, 세계를 너무 쉽게 이해했다고 착각하지 않던 겸손함이다.
이 지점에서 일일신과 처음처럼은 서로 멀리 떨어진 말이 아니다.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결국 날마다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려는 노력과 닿아 있다. 새로움이란 더 많은 것을 갖는 일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낯설게 바라보는 능력이다. 이미 겪었다는 이유로 쉽게 결론 내리지 않고, 이미 안다는 이유로 더 듣지 않으려는 태도를 경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새로움이다.
우리는 흔히 새해 덕담을 큰 말로 주고받는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랍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종종 결과만을 향한다. 삶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결과보다 태도다.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타인을 어떻게 대하며,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가 삶의 결을 만든다.
일일신은 그래서 아주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실천에서 시작된다. 어제보다 말을 조금 덜 단정적으로 하는 것, 분노가 치밀 때 한 번 더 숨을 고르는 것, 익숙한 생각을 의심해보는 용기. 처음처럼 묻고, 처음처럼 듣고, 처음처럼 조심하는 태도는 결코 유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고, 삶을 깊게 만드는 힘이다.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판사가 되기 쉽다. 이미 이만큼 살았는데, 아직도 이 모양이냐고 자신을 몰아붙인다. 그러나 처음처럼 산다는 것은 완성된 존재가 되기를 유예하는 용기다. 아직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아직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스스로에게 남겨두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늙지 않는 마음이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렇다. 우리는 종종 한 번의 실망으로 사람을 규정한다. 저 사람은 원래 그렇다고, 달라질 수 없다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처음처럼 바라본다는 것은 타인을 과거의 기록으로만 읽지 않는 일이다. 오늘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것, 어제의 말보다 지금의 침묵을 귀 기울여 듣는 것. 그런 태도가 관계를 살리고 공동체를 숨 쉬게 한다.
새해 덕담이란 결국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내는 방식에 대한 제안이다. 올 한 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계획은 어긋나고, 기대는 빗나가며, 삶은 늘 예정보다 거칠다. 그렇기에 더욱 필요한 것은 날마다 자신을 다시 처음의 자리로 불러오는 일이다.
한 해를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다시 지치고, 새로움에 대한 다짐도 흐려질 것이다. 그럴 때마다 거창한 결심을 꺼낼 필요는 없다. 오늘 하루, 어제보다 조금 덜 굳어진 마음으로 살아보겠다는 다짐이면 충분하다. 일일신, 그리고 처음처럼. 이 두 말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건너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따뜻한 새해 덕담일 것이다.
◇ 박철 : 감리교 은퇴목사,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시인. 생명과 영성, 사회적 실천을 주제로 글을 써왔다. 매일 자작시 한편을 지인들과 나누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어느 자유인의 고백』, 『시골목사의 느릿느릿 이야기』, 『행복한 나무는 천천히 자란다』, 『목사는 꽃이 아니어도 좋다』, 『낙제 목사의 느릿느릿 세상 보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