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22. 갈수록 태산 오리농장(3)
열쇠를 찾아 문을 여는 순간 어딘선가 삐, 열시 시보를 알리는 방송소리가 들려왔다. 출발한지 무려 세 시간 만에 농장에 도착한 것이었다.
(...?)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했다. 높다란 물탱크 아래로 여기저기 흩어진 자주 빛 고무통과 거름이 든 포대와 여기저기 나뒹구는 분무기와 물조리게와 삽과 괭이, 그물과 천막조각...
우선 배낭을 벗어 고무 통 위에 놓으려다 목이 말라 물병을 찾느라고 배낭을 여는데 영순씨가 사준 김밥냄새가 진동했다. 시장한 김에 신문지를 펴고 두어 개 입에 넣으니 간간한 게 먹을 만 했다. 버스안과 걸어오는 길에서 하도 털럭거려 병뚜껑 아래로 막걸리방울이 비치는 <생탁>을 열어 등산용 컵에 부어 마시니 과연 꿀맛이었다. 순식간에 김밥과 막걸리 한 통을 비워버린 열찬씨가 푸우, 만족하게 트림을 하다 생각하니 아직 열 신데 점심밥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배낭 안에 등산갈 때 비상식량인 식빵 몇 조각과 사탕, 그리고 목숨보다 더 귀한 플라스틱 병 소주 한 병이 있다는 걸 생각한 열찬씨가 비죽 웃으며 사방을 둘러보니 이 제서야 비로소 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반드시 물을 먹고 살아야하니 생존의 우선조건인 물탱크를 중심으로 수도꼭지가 하나 매달린 곳에 세면장과 빨래터를 만들고 마당은 물론 쓰레기소각장역할까지 해야 할 넓은 공터 뒤에 울타리에 바짝 붙여 농막을 앉히고 그 뒤쪽에 두엄이나 장작을 쌓으면 될 터였다. 입구에서 부터 근 7,80미터의 거리를 화물차도 능히 드나들게 한 5미터쯤의 길을 내고 그 아래쪽으로 무방비로 펼쳐진 600평의 황무지에 손수레가 다닐 수 있도록 가로 세로로 반듯한 밭을 경작하면 될 일이었다. 삽과 곡괭이를 꺼내 우선 길과 집터, 마당이 될 자리를 뺀 경작지의 경계선을 긋는데 여기저기에 억새와 솔쇠, 개솔쇠, 띠풀의 뿌리가 단단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데다 너무나 촘촘하게 밀생한 클로버 때문에 진도가 지지부진한데 덜컹, 이번엔 가느다란 칡넝쿨에 걸려 낫을 가져다 쓰윽 베어내고 다시 시작하는데
“!”
절로 탄식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평평한 풀밭위로 바둑판처럼 가로세로로 퍼진 칡넝쿨이 마치 그물을 치듯 모눈종이무늬를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울타리 바깥에서 넘어온 팔뚝만큼 굵은 칡넝쿨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가로세로로 길게 길게 뻗었는데 공간이 하도 넓으니 마치 노끈처럼 직선으로 뻗은 것이었다.
“농사지을 줄 모르는 사람이 땅을 가진 것은 이만저만 고통이 아닙니다. 소득도 없는 매실 밭의 소독은 물론 천이백 평 밭에 풀을 베고 칡뿌리를 캐는 데만 연간 수백만 원이 들지요.”
문득 철마에서 추어탕을 먹던 날 땅주인 윤여사가 하던 말이 생각나
(이런? 이거 장난이 아닌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다가도
(이렇게 만포장으로 넓은 땅에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게 어디야? 옛말에 거부(巨富)는 하늘이 주고 소부는 부지런함에 있다고 했으니 나만 열심히 개간하면 이 광활한 땅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칡뿌리는 나중에 캐기로 하고 눈에 많이 거슬리는 억새뿌리를 캐고 칡 줄기만 낫으로 베어내고 대충 눈어림으로 밭으로 개간할 땅을 재어보니 지면이 남에서 북으로 약간 경사가 진데다가 한 12미터 뒤에 옆으로 수로가 있어 거기까지 가로 50미터, 새로 12미터면 전체 600평방미터 약 160평정도의 밭이 될 것이었다. 비로소 연장을 놓고 한숨을 돌리는데 저 위쪽 소나무위에 지은 원두막에서
-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아지랑이 속삭이네
봄이 찾아온다고
어차피 찾아오실
고운 손님이기에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반기려네
하얀 새 옷 입고
분홍 신 갈아 신고
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박인희의 <봄이 오는 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하, 참으로 청량한 봄날이로고.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봄을 맞으면 다시 마음도 밝아지고 대하소설도 진도가 좀 나가겠지.)
교장선생과 갈등이후 진도만 좀 나갈 만하면 전화가 와서 리듬이 끊겨 지지부진을 면치 못 하는 소설이 좀 써질까 하고 빙긋 웃는데
“삐이! 케이비에스 정오뉴스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정례 국무회의에서...”
이번엔 길 아래의 유난히 담장이 높고 칙칙한 분위기의 수십 가지의 오리와 닭, 새들을 키운다는 집의 2층 가건물에서 시보와 뉴스가 흘러나왔다. 바람에 전파가 흔들리는지 라디오소리는 높았다 낮았다 끊어지기를 반복하며 서로 경쟁이나 하듯 좌우의 귓속으로 파고들었고 어떤 때는 휴전이라도 한 듯이 멈추어 사방이 괴괴했다. 물탱크 그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또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코끝을 간질이는 가는 봄바람에 슬며시 눈을 뜨는데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밤에 들려오는 자장노래 어떤가요
오예
몰랐던 그대와 단 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떨림과 둘이 걸어요-
생전 처음 듣는 코맹맹이 노랫소리가 들려 이 깊은 산중에 이 무슨 소리인가 하며 멍청히 듣는데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오예
그대여 우리 이제 손 잡아요
이 거리에 마침 들려오는
사랑 노래 어떤가요
오예
사랑하는 그대와 단 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도 제 손으로 라디오를 끌 수도 없어 그냥 멍청히 들으니 또 그런 데로 들을 만도 했다. 마침내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오, 또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사랑하는 연인들이 많군요
알 수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흩날리는 벚꽃 잎이 많군요 좋아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참으로 긴 코맹맹이소리가 끝나는데 어디선가
“보소!”
하며 키가 크고 구부정한 노인과 땅딸막한 사내하나가 길가에서 소리를 지르더니
“아, 예. 안녕하세요!”
열찬씨의 반응에 휘적휘적 걸어오기 시작했다.
“시, 시방 다, 당신 여기서 뭐하는 거요?”
키가 큰 노인이 꺽꺽거리며 목소리를 쥐어짜는데 저승꽃이 자글자글한 얼굴이 금방 시뻘게졌다.
“보, 보다시피 밭을 일군다고...”
손에서 삽을 놓고 공손하게 바라보는데
“미, 미친 인간 아이가?”
삿대질까지 하는 말라깽이영감을 보며
“예에!”
열찬씨의 눈빛이 사나워지자
“보소, 아저씨. 이 양반이 귀를 먹어서 남의 말을 못 들어 저래 성질이 급하다 아니요.”
어깨도 넓고 목이 굵은 사내가 가로막고 나섰다.
“마 못 들은 척 하이소.”
눈을 끔벅하더니
“형님, 그만 가입시더.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하며 오른 쪽 귀에 바짝 대고 고함을 질렀다. 그나마 그 쪽은 희미하게 들리는지
“당장 때려치우라 캐라. 밭도 밭 같지 않은 거 가지고 남의 길만 막고!”
도무지 알아듣지도 못 할 말을 빽 내뱉고 물러나는데 그물로 씌운 커다란 철문 앞에 왼 포터화물차 하나가 멈춰 서서 창문을 열더니 두 노인네와 뭐라 인사를 주고받더니 노인네들은 걸어서 아래로, 포터는 위로 향했다.
“별 싱거운 노인네들도 다 있네.”
시계를 보니 오후 두시가 넘었다. 배가 고파 배낭에서 소보루빵 한 봉지와 납작한 플라스틱 병 소주를 꺼내 소주를 먼저 마시고 빵을 씹는데 입속에서 뱅뱅 돌뿐 도무지 안주가 되지 않았다. 4홉쯤 되는 우유병에 넣어온 물이 떨어져 물탱크에 붙은 밸브를 스위치를 돌리자 다행히 물이 나왔다. 마침 수돗가에 바께스하나와 플라스틱바가지가 있어 한 바가지 물을 떠와 소주와 함께 찔끔찔끔 마시니 한결 마시기가 좋았다. 그런데 한 동안 안 하던 노동으로 땀을 많이 흘리고 기진맥진한 상태에 독주를 마셔선지 뱃속이 찌르르하며 등이 화끈거렸다. 술잔을 놓고 지금껏 파헤친 땅을 가늠해보니 가로 2미터 세로 2미터로 한 평이 조금 넘는듯했는데 그 좁은 바닥에서 나온 크고 작은 돌이 수북했다.
한참이나 주변을 살펴보던 열찬씨가 입구에서 들어오는 길과 매실밭 사이에 끼인 한 2미터 폭의 풀밭에 우선 큰 돌부터 옮기고 고무 통 하나를 찾아와 작은 돌들을 담아 드는데 삐이, 3시 시보가 울렸다. 3시 40분 버스를 타지 않고 80분후 다섯 시 차를 탄다면 저녁 일곱 시가 훨씬 지나서 여덟시 가까이 되어야 집에 도착할 것이었다. 남은 소주를 털어놓고 점퍼를 찾아 입고 배낭을 둘러매고 문단속을 하니 벌써 세시 15분이었다. 아침에 올라올 때 시간을 재니 25분이 걸렸으니 서둘러야 버스에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철문을 닫고 돌아서니 마침 식당에서 음식물찌꺼기를 싣고 올라가던 화물차기사가 삐익, 경적을 울리면서 씨익 웃어 보이고 지나갔다. 한참을 걸어 닭똥 냄새가 진동하는 아래 집을 지나치는데 문득 아랫도리가 터질 듯이 오줌이 마려워 길에서 산을 보고 돌아서서 일을 보는데 끼익, 이번에는 또 하나의 잔반차가 경적을 울리더니 이제 갓 스물이나 되어 보이는 앳된 총각하나가 운전석에서 씨익 웃었다. 돌아오는 길이 약간의 내리막이라서 그런지 20분 조금 지나서 아파트단지 안 회차장에 도착하자
“어서 오세요. 빈차로 출발할 줄 알았더니.”
아침의 그 운전기사가 반갑게 맞았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차창 밖을 바라보니 고리원전 옆으로 새파란 동해바다가 아득히 펼쳐지고 간간이 작은 배들이 한 둘 지나가고 커다란 선박하나가 정박한 곳도 보였다. 임랑해수욕 장 앞 정훈희네 까페 <꽃밭에서>를 본 기억이 나는데 그만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아저씨, 그만 일어 나이소. 종점입니다.”
하는 소리에 눈을 뜨니 기사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수고했어요.”
하고 벤치에 앉는데
“아저씨, 그 180번 시간표 휴대폰으로 찍으세요.”
하면서 휘파람을 휙 불며 차고지로 향했다. 10여분을 기다려 63번 버스를 탔는데 <장보고, 이랴, 이랴>라는 이상한 이름의 고기집이 있는 고개를 넘어 서너 정류소를 지나 송정역 앞에 이르자 그만 길이 막혀 버스가 꼼짝달싹 안했다. 이러다 언제 집에 가게 되나 걱정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여섯 시 시보가 울리는데 차창 밖을 바라보니 아직도 해운대신도시를 벗어나지 못했는지 안내방송엔 처음 듣는 아파트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또 다시 설핏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여섯 시 40분, 버스는 신세계백화점 앞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수영로타리를 거쳐 수영사직공원을 지나 수영아파트하차지점 까지 1킬로도 채 안 되는 길에 또 30분이 걸려 7시 10분이었다. 힘이 하나도 없이 망미고가도로 아래로 휘적휘적 걸어가는데 저 멀리 선경아파트를 돌아 망미주공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황야에 버려진 고성(古城)처럼 아득히 높아보였다. 힘도 없지만 배도 고프고 오줌도 마려워 길가를 살피는데 마침 보신탕집이 보여 얼른 들어가서 <탕>하나에 <시원>소주 하나를 시키고 화장실부터 찾았다.
“혼자 오셨어요?”
자리에 앉아 물수건으로 손을 닦는 열찬씨에게 서비스안주를 들고 온 주인여자가 생글생글 웃으며
“처음 보는 아저씬데 어디 사시오?”
“망미주공이요.”
“그런데 웬 땀을 그리도 흘리시오?”
“예. 밭농사조금 짓느라고.”
하며 소주 한 잔을 털어 넣는데
“형수, 빨리 안 오고 뭐 하요? 기다리는 사람 숨넘어가겠다.”
한쪽 구석에 군용담요를 펴고 고스톱판을 벌린 두 사내의 얼굴이 영판 닮아있었다.
“알았어. 대름은 성질도 급하제?”
오봉을 든 채로 다가가서 화투장을 집어든 여자가 철퍽, 소리 나게 화투를 치더니
“옳지, 쌍피가 붙어 3점 났네. 아이구 우리 서방님은 피박이네.”
하며 웃는데
“예. 노인네 셋이 소일사마 하는 장산데 손님도 없고 해서.”
칠십도 넘어 보이는 영감이 민망한 듯 웃었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국밥을 퍼먹으면서도 중간중간 소주잔을 비워 어느 듯 국밥도 소주병도 바닥을 보일 때쯤 비로소 포만감을 느끼며 숨을 고르는데
“당신, 지금 어덴데?”
삐릭거리는 휴대폰을 켜자말자 영순씨의 상기된 목소리가 화살처럼 날아오는데
“인자 버스 내려서 밥 먹고 있다.”
“시간이 몇 신데 아직 집에 안 들어오노?” “당신은?”
“집이지. 모처럼 당신 밭에 간 이야기도 듣고 싶어 일찍 왔는데 영감이 없으니, 참 당신 거기 어디요?”
“응. 고가도로 밑에 보신탕집.”
“보신탕집?”
“응 현서 데리고 분수구경하는 자리 있지. 거기서 길 건너 온 쪽에.”
“아, 생각난다. 당신 거기 꼼짝 말고 있으소.”
남은 소주를 마시고 계산을 한 뒤 주인아주머니가 빼다 주는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영감, 갑시다.”
영순씨가 도착했다.
“할만 하덩교?”
“아직은 잘 모르겠어. 허허벌판에 혼자 달밤에 체조하듯 꾸물거리는데 오가는 사람들에 차들이 모두 기웃거려서 동물원 원숭이 꼴이었다.”
“봄볕이 따가웠을 텐데. 그 얼굴 빨갛게 익은 것 좀 봐. 아이구 목덜미도 절딴났네.”
“뭐 흑국놈 목욕 하나마나라고 본래 새까만 사람이 볕에 좀 끄신다고 달라지나. 단지 칡넝쿨이 너무 우거져 걸음 떼기조차 힘이 들고 땅속에 크고 작은 돌이 너무 많아 한 뼘 일구는데 한 시간이 걸리는 판이라...”
“그래 오늘은 얼마나 팠소?”
“가로 세로 2미터씩 한 평 조금 넘게.”
“그래서 어느 천 년에 감자 심고 고추 심고 하겠노?”
“한 1개월이면 한 백 평은 되겠지. 우리 홍여사 좋아하는 고추는 실컷 심게 해줄게.”
집에 도착해 세수를 하자말자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는 영순씨의 말에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소파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