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유자
이 광
몰아친 바닷바람 배겨내며 자란 얼굴
이글이글 뙤약볕에 초록은 얼룩지고
밤이면 다독여주는
달빛 따라 물든다
노랗게 익어가도 아직 때가 아니다
첫서리 받아내며 시린 몸살 앓고 나야
신맛을 감쌀 줄 아는
눈물 어린 향이 밴다
오래전 남해에 집수리하러 갈 일이 있었습니다. 유자 농장을 하는 집으로 집 앞이 온통 유자밭이었습니다. 노란 유자를 보며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 유자차를 담아 겨울 한철 먹을 만큼 사가져 갈 생각을 했지요. 차로 마시지 않더라도 유자청을 잼처럼 식빵에 발라 먹길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주인장이 첫서리가 내리기 전엔 수확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때 알게 된 사실이 한 편의 시로 빚어졌습니다.
초록의 시절 바닷바람에 몸을 단련하고 뙤약볕 아래 수련을 계속한 유자는 이후 달빛의 영향을 받은 듯 노랗게 익어갑니다. 정완영 시인이 감을 태양의 권속이 아니라 했듯 유자 또한 달의 계보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시린 몸살과 같은 첫서리의 세례를 받아야 진정한 유자가 된다는 사실은 우리 인생살이를 새삼 돌아보게 합니다. 아픔을 겪은 자가 아픔을 감쌀 줄 알고, 그런 그에게서 향기가 우러나는 것 아닐까요.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