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산티아고 순례이야기(21) 20일차 -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에서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까지

아침 카페서 커피와 빵 먹고 출발
햇살 좋고 잉크색 하늘 너무 선명
젊은 여성들 윗옷 벗고 햇빛 즐겨
원래 예상 숙소 만석 3km 더 걸어
오늘 26.4km, 전체 394.1km 걸어

조해훈 승인 2025.01.16 10:30 | 최종 수정 2025.01.16 13:34 의견 0
필자가 커피와 빵을 먹은 카페. 일하러 가는 분들도 커피와 빵을 먹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늘은 2024년 11월 6일 수요일이다. 알베르게에서 아침 7시 10분쯤 나왔다. 바깥은 어두웠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바(Bar)에 가니 문이 닫혀 있었다. ‘아, 오늘 아침에는 커피도 한잔 마시지 못하고 출발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산티아고 문양을 보며 도로를 건넜다.

좀 걸으니 자그만 카페가 문을 열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예기치 않았는데 말이다. ‘아, 아침에 일을 하러 가는 주민들이 빈속을 채우고 가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Bar-sol-cafe’란 이름의 이 카페에는 이것저것 팔았다. 키가 작고 뚱뚱한 주인아주머니가 혼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참으로 성실해 보이는 아주머니구나.’라고 여겼다. 손님들이 주문한 커피 등을 내주곤 얼른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커피잔과 접시 등을 치우곤 테이블 위를 걸레로 닦았다. 속으로 ‘저렇게 부지런하신데 어떻게 살이 찌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테이블에 앉아 커피와 빵 하나를 먹었다. 일하러 가는 주민들이 커피와 빵 등을 얼른 먹고 나갔다. 필자만 태평이었다. 천천히 먹고 잔과 접시를 가져다주곤 자그마한 소시지 2개와 계란 2개, 바나나 1개, 주스 한 병을 샀다. 커피와 빵값을 포함해 전체 9유로 50이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1만 5,000원이 좀 안 됐다. 카페 밖으로 나왔다. 오전 7시 56분이었다. 카페에 들어갈 때는 못 봤는데 현관문 오른쪽 벽에 ‘A SANTIGO 405KMS’라는 글씨가 붙어 있다. 산티아고까지 405km가 남았다는 말이다.

아침 먹을거리로 빵을 사가거나 일하러 가는 등 주민들이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고 있다. 사진 = 조해훈

아직 날씨가 어둡다. 도로 오른쪽에 성당이 있다. 산티아고 문양을 보고 도로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건물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 자재를 가져와 내리고 있다. 산티아고 길은 주택가로 이어져 있다. 그 길을 따라 걸어가니 인도(人道)에 ‘CARRION’(까리온)이라는, 이 마을 이름이 적힌 산티아고 문양이 박혀 있다. 아침거리를 사서 갖고 가는 사람, 일하러 가는 사람 등 주민들이 다니고 있다. 마을이 생각보다 크고 길다. 오전 8시 15분, 마을을 벗어나기 직전 길가에 큰 성당이 있다. 성당을 지나니 본격적인 순례길이 시작된다.

인도에 'CARRION'(까리온) 이라는 지역명을 새긴 산티아고 문양이 박혀있다. 사진= 조해훈

다른 지역에서 보지 못한 표지석이 있다. 현무암 같은 돌에 산티아고 문양을 새겨넣고 앞으로 나올 마을을 표시해 놓았다. 이제 날이 완전히 밝아져 햇빛이 나왔다. 도로 옆을 따라 걷는다. 저 앞에 순례자 세 사람이 걷고 있다. 아침부터 햇살이 좋고 하늘은 잉크색이다. ‘오늘 하루도 아름다운 순례길이 되겠구나.’라는 예감이 들었다. 왼쪽으로 펼쳐진 경작지 위로 잉크색 하늘이 ‘나는 원래 이런 색이야. 별거 아니야.’라는 식으로 햇살과 고동색 경작지와 함께 멋진 묘미(妙味)를 자아낸다. 필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는 가장 큰 혜택이 이런 자연 속에 빠져들어 하루에 평균 8시간 이상씩 걷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에 기회 되면 또 와야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온전히 필자의 주관이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게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있는 성당을 배경으로 셀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조해훈

오전 9시 38분, 좌우에 나무들이 있고 그 너머엔 경작지가 있는 흙길이다. 오늘 걷는 길의 고도는 822~903m이다. 산티아고 길이 스페인 북부의 산맥지대여서 고도가 기본적으로 800m는 넘는다. 그런데 해발이 높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길 좌우에 끝없이 이어져 있는 경작지 때문이리라. 정경도 그렇지만 나무에 이는 바람 한 점 없이 너무나 평화롭고 고요하다. 이런 분위기에 좀 느긋하게 혼자 시간을 좀 보내고 싶건만 주변에 의자가 없을뿐더러 앉아 쉴만한 공간이 없다.

아침부터 경작지 위 하늘이 잉크색이다. 사진= 조해훈

이 지역은 포도주 생산 지역도 아니어서 포도밭이 없고, 소를 키우는 지역도 아니어서 초지도 없다. 오로지 밀을 심고 다른 작물을 심는 경작지만 있다. 우리나라보다 더 사람이 없는 산골이지만 놀리는 땅이 한 군데도 없다. 순례길 주변 주민들의 부지런함에 감복만 할 따름이다. 길은 비슷한 것 같지만 정말이지 1m도 같은 곳이 없다. 이를테면 수만, 수십만 평의 경작지가 있더라도 하다못해 길 가 이랑에 자라난 풀의 모양이라도 같지 않다. 그러니 유사한 자연경관이라도 필자의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느끼는 감정 또한 크든 작든 다르다. 오른쪽 밭에 베지 않은 옥수수밭이 누렇게 있다. 이 지역에서는 낙농(酪農)을 하지 않으므로 옥수수를 트랙터로 베어 소를 키우는 농가에 사료로 팔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오전 10시 38분, 오른쪽에 돌 벤치가 하나 있다. 벤치 뒤에는 마치 우리나라의 벼를 벤 자리처럼 밑둥치 부분만 누렇게 있다. 아마 밀을 벤 후 아직 밭을 갈아엎지 못해서 그러리라. 잠시 앉았다. ‘나무 벤치라며 더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엉덩이가 차갑고 딱딱해서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순례자들이 잠시 앉아 요기하고 가라는 뜻으로 돌 벤치를 만들어 놓았으리라. 나무 벤치는 비바람에 오래 가지 못해 낡아버리고 상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순례길은 직진이고 좌우 길은 트랙터가 다니는 길이다. 사진= 조해훈

들판 한 가운데여서 길은 트랙터 등 농기계가 다닐 수 있도록 조성돼 있다. 사거리가 나왔다. 순례길은 그대로 직진이다.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해 들어가면 순례길 가의 밭만 있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넓은 경작지들이 있다는 의미이다. 시간이 갈수록 햇살은 더 강해지고 하늘은 점점 진한 잉크색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아름답고 환상적인 길을 어찌 돈이나 물질로 환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혼자 걷기 아깝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필자처럼 느릿하게 걷지 않고는 이런 풍경을 가슴 속에 다 담지 못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순간 필자의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슬픔이 보이는 듯하여 마음이 아렸다.

오전 10시 44분, 한 여성 순례자가 맞은 편에서 걸어왔다. 그 여성이 먼저 “뷰엔 까미노!”락고 하자, 필자도 “뷰엔 까미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찌 거꾸로 걷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말은 하지 않고 웃으며 필자를 스쳐 지나갔다.

오후에 만난 순례자들. 산티아고 순례길의 반대편으로 걷는 단체 순례자들이다. 사진= 조해훈

아무도 없는 길을 또 걸었다. 오전 10시 48분, 우리나라의 ‘겨울추’(?) 같은 작물을 심어놓은 큰 밭이 있다. 초록색 작물이 저 지평선까지 진녹색으로 심겨 있다. 그런데 ‘저 작물을 어떻게 수확할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밀이나 옥수수 등은 트랙터로 베면 되지만 저건 손으로 뽑아야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런 산골은 마을마다 노인 몇 분만 계시니 더 궁금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산티아고 순례길의 여성들은 집안일만 하지 바깥일은 오로지 남자들이 하는 상황이지 않은가? 독자 중에는 “부지런히 걷기만 하시지,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그리 많이 하시느냐?”라고 반문하실지 모른다. 그렇기도 하다. 필자는 원래 소용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이란 걸 인정한다. 좀 과한지는 몰라도 ‘이런 상태로 생을 다할 때까지 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진정한 마음이었다.

점심 때쯤 만나 카페. 여기서 커피와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사진= 조해훈


혼자서 별 마음을 다 가져보며 걸었다. 낮 12시 39분,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입구에 자그마한 알베르게를 겸한 카페가 있고 순례자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며 음식 등을 먹고 있다. 아침에 숙소에서 출발한 지 5시간 30분 정도 지났다.

젊은 여성 중에는 햇빛 쐬기를 하는 듯 윗옷을 벗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주인아저씨에게 커피를 먼저 한 잔 주문해 마셨다. 그런 다음 간단한 점심 메뉴를 시켜 먹었다. 얇게 썬 쇠고기 두 쪽 살짝 구운 것과 감자칩을 곁들인 메뉴였다. 이런 메뉴가 있는 카페가 드물다. 커피와 음식까지 합쳐 우리나라 돈으로 1만 3천 원가량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쌌다. 게다가 순례자 전용 카페나 바(Bar) 등에 가면 순례자용 메뉴가 있어 더 쌌다. 카페가 햇살이 잘 드는 길가에 있는 데다 파라솔까지 있어 다른 순례자들도 오래 앉아 있었다. 필자와 두어 번 면이 있고, 미국 하와이에 산다는 중국계 미국 남성이 인사를 했다. 필자도 인사를 했다. 그 사람은 생맥주를 주문해 마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날이 더워서인지 대부분 순례자가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필자도 햇빛 바라기를 하면서 1시간 조금 넘게 앉아 놀다가 다른 순례자가 다 가고 난 후 일어섰다. 마을에 집은 네댓 채밖에 되지 않았다. 이어지는 길은 옆에 나무가 제법 있었다. 순례길과 좀 떨어져 오른쪽으로 차량 전용 도로가 쭉 뻗어 있다. 오후 2시 27분 여러 명의 순례자가 맞은 편에서 즐겁게 웃으며 오고 있다. 필자와 인사를 서로 나누며 스쳤다. 아마 단체 순례객인 것 같았다. 오래 걸은 순례자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여하튼 어찌 걷든 그들도 인연이 있어 순례길을 밟고 있다.

자갈로 만든 순례길 표식에 필자도 돌 한 개를 주워 얹었다. 사진= 조해훈

오후 3시 8분, 자갈돌을 모아 만든 화살표가 몇 개 있다. 필자는 주변에 있는 자갈돌을 하나 주워 화살표에 얹었다. 아마 다른 순례자들도 그렇게 하리라 여겼다. 오후 3시 17분, 도로 건너 저 앞에 마을이 보인다. 마을로 접어드니 창고 같은 게 몇 채 보였다. 집은 거의 없었다. 오후 4시 32분, 필자가 오늘 목적지로 삼은 마을에 도착했다.

레디고스(Ledigos)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니 왼쪽에 사립 알베르게가 있고, 필자가 묵으려고 생각한 공립 알베르게는 오른쪽 언덕으로 몇백m 올라가야 한다. 언덕을 올라가 찾아간 공립 알베르게는 창고였다. ‘공립 알베르게가 운영이 안 돼 문을 닫는 모양인가?’라며, 아까 본 사립 알베르게로 내려갔다. 카페 겸 알베르게였다. 카페 야외 의자에 동양인 남자와 서양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인사를 하며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인아저씨는 “알베르게는 손님이 다 차 더 이상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필자는 “그러면 인근에 다른 알베르게는 없습니까?”라고 물으니, “여기서 3km가량 더 가면 알베르게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필자가 원래 오늘의 도착지로 삼은 마을. 왼쪽으로 가면 사립 알베르게가 있고,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공립 알베르게가 있는 걸로 앱지도에는 나와있다. 사진= 조해훈

필자는 좀 피곤한 상태였다. 혹시나 해서 다시 아까 갔던 공립 알베르게로 갔다. 공립 알베르게라고 가리키는 건물 위쪽의 다른 건물도 창고 같았다. 할 수 없이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하여 ‘3km를 더 걸어가야겠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사거리에서 좀 전에 카페에서 만났던 남녀 순례자를 만났다. 이분들은 카페에서 나와 직선으로 걷고, 필자는 위 언덕에서 내려와 만난 것이다. 필자는 이분들이 야외 카페에 앉아 있길래 그 알베르게에 접수한 후 커피를 마시는 줄 알았다. 그리하여 “그 알베르게에 접수를 못한 모양이죠?”라고 물으니, 남자가 “방이 없다고 하더군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앞서 걸었다.

필자는 ‘혹시 3km 후 마을에도 방이 없으면 곤란한데’라는 생각을 하며 두 사람 뒤를 따라 걸어갔다. ‘저 두 사람은 부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들 뒤를 따르는데 필자는 점점 뒤로 쳐졌다. 그 사이 뒤에서 여성 한 명이 따라와 필자를 앞섰다. ‘필자가 피곤한 만큼 저들도 피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거의 1시간가량 걸으니 사립 알베르게가 있었다. 오후 5시 반쯤 되었다.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마을이었다. 오늘 아침에 출발한 지 대략 11시간 만에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레디고스 마을의 공립 창고로 변해있고. 사립 알베르게는 꽉차 다시 3km를 더 걸었다. 필자보다 앞서 걷는 사람들. 사진= 조해훈

이 마을에는 이 알베르게 말고는 다른 곳은 없었다. 다행히 방이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친절했다. 좀 전에 혼자 걷던 여성은 이 마을을 지나간 모양이었다. 부부 두 사람이 접수한 후 필자도 접수했다. 마침 저녁 식사도 된다고 했다. 필자는 예약했다.

2층 방으로 들어오니 이들 부부 두 사람이 먼저 짐을 풀고 있었다. 인사를 했다. 남자는 일본인이고, 여자는 스페인 사람이었다. 필자는 속으로 ‘두 사람이 결혼해 미국에서 사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했다. 샤워실로 가 씻고 방에 돌아오니 남자가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필자의 침대는 남자 바로 옆자리였다. 필자는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어디 분이십니까?”라고 물으니, “일본 동경에 삽니다.”라고 했다. “사모님은 유럽 분인 것 같습니다만?”이라고 했다. 그러자 남자는 “제 아내가 아닙니다. 순례길에서 만났습니다.”라고 했다.

총 11시간 만에 도착한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 마을에 있는 사립 알베르게. 사진= 조해훈

그런 후 1층 카페 안쪽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구석진 자리에 유럽 남성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필자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필자와 한방을 쓰는 일본인 남성이 그들과 합류했다. 일본인은 그들과 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좀 있으니 한국인 중년 부부가 그들의 뒤 테이블에 앉았다. 안면이 있는 한국인 아버지와 아들이 들어와 테이블이 없어 필자와 합석했다. 식당 들어오는 입구 쪽에 필자와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이탈리아 여성 두 명이 앉았다. 식사를 함께 하면서 한국인 부자(父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아버지는 청주에서 건설업을 하고 있고, 아들은 막 군대에서 전역해 복학하기 전에 함께 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무릎이 좀 좋지 않아 배낭을 매일 택배로 보내며 걷습니다. 빈 몸으로 걸으니 훨씬 수월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은 후 2층 방으로 올라왔다. 침대 한 개가 비어있었는데 얼굴에 털이 많고 뚱뚱한 외국인 남성이 들어와 누워 있었다. 필자도 바로 누워 잠을 청하였다.

오늘은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에서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까지 26.4km를 걸었다. 생장부터는 총 394.1km를 걸었다. 이제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절반을 걸은 것이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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