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차(茶)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고 있는 조해훈 시인이 최근 시집 《섬진강》(푸른별)을 펴냈다.
시집에는 전북 진안에서 발원한 섬진강이 남해로 흘러 들어가는 경남 하동 일대 섬진강 변의 이야기와 이 일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 등을 소재로 삼은 시 100수가 실려 있다.
시집은 4부로 편성돼 있다. 제1부에는 〈해 저무는 섬진강〉·〈겨울 섬호정에서〉 등 섬진강변의 하동지역에서 느끼는 시인의 감성 등이, 제2부에는 〈순천집〉·〈후니수산 아주머니〉 등 강 인근에서 장사를 하거나 일상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제3부에는 고향인 하동에서 활동을 하거나 부산 등 다른 지역에 사는 하동 출신의 시인·언론인 등 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 시들이 들어있다.
이를테면 하동 출신으로 부경대 총장을 지낸 강남주 시인, 동명대 총장을 지낸 정순영 시인 등을 소재로 한 시편들이다. 그리고 하동 출신으로 여전히 고향에 살면서 시를 쓰고 있는 김필곤·강기주 시인 등도 시적 소재로 삼았다. 언론인으로는 전 부산매일 편집국장을 지낸 차용범 기자, 국제신문 논설위원을 역임한 조송현 기자, 현 부산일보 논설위원인 정달식 기자, 현 국제신문 논설위원인 최현진 기자 등이다.
제4부에는 섬진강을 1인칭 화자로 설정한 작품들이 실려 있다. 오랜 세월 변함없이 흘러온 섬진강이 듣고 겪은 이야기 등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지은 시편들이다.
물론 제1~4부에 실린 시편들은 반드시 위에서 각각 나눈 소재로 지은 시들 외에 다른 내용들도 함께 들어 있다.
시인은 시집 뒤쪽의 〈후기〉에서 “섬진강변에 살다 보니 이 강을 소재로 시를 제법 지었다.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밥값을 해야 한다. 섬진강변에서도 특히 하동과 관련된 시를 위주로 한 권의 시집으로 묶었다. … 섬진강과 얽힌 자잘한 이야깃거리를 시의 소재로 쓰기도 하고 하동지역 출신의 다양한 분들에 대해서도 감히 시의 형식으로 얽어놓았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 시집 《섬진강》을 하동지역의 자연과 사람살이에 대한 자그마한 흔적으로 봐주면 좋겠다.”고 시집을 낸 의도를 적고 있다.
그러면 시를 예로 들면서 이번 시집에서 보이는 시인의 시적 경향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다.
제1부의 시 〈해 저무는 섬진강〉에서 “어떤 때는 삶이 무거웠다/ 어떤 때는 삶이 가벼웠다/ 추석 하루 전날 사람들을 만나면서/ 속으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곤/ 해 질 무렵 부산 갔다 화개로 돌아오는 길/ … ”이라면서 60대 중반을 살아온 시인의 삶에 대한 회한을 털어놓고 있다. 이어 시의 후반부에서 “누구든 예외없이 산다고 힘겨운 날들을 보내는 사람들은/ 내일이 음력으로 팔월 보름이어서 달이 누렇게 꽉 찬 모습을 보며/ 더러는 위안을 받고 더러는 여러 걱정으로 한숨을 내뱉는다…”라며 섬진강변 사람들의 속마음을 대신 표현하고 있다.
제2부의 시 〈순천집〉에서는 “섬진강 인근 하동향교 옆 보신탕집/ 길가에 순천집 간판 걸고 수십 년 장사하다/ 얼마 전 장사를 접었다/ 보신탕 먹으면 안 된다는 법이 생긴다는 말도 있지만/ 이제 장사하기에 나이도 너무 많은 데다/ 하루에 손님 한두 명 있을까 말까/ … ”라며, 섬진강변에서 장사해 먹고사는 소상공인의 애환을 읽어내고 있다. 그러면서 시 〈만추에 느끼는 감성〉에서는 “늦가을 어젯밤 비에 떨어진 수북한 낙엽을 밟으니/ 육십 중반 사내의 우울한 갱년기 감성이 아니라/ … / 생각의 무게에 짓눌려서일까, 섬진강물을 보아도/ 짙고 무거운 단풍색으로 가벼워지지 않는다/ …”라며, 세상 풍파를 겪어내느라 든 여러 무거운 생각에 짓눌려 가을 단풍이 꼭 반가운 것만은 아니라고 실토하고 있다.
제3부의 시 〈정순영 시인〉에서는 “그 크고 두꺼운 손으로/ 어찌 그렇게 여리고 섬세한 시를 쓰느냐고/ 몸집은 덩치 큰 거구라도/ 마음만은 누구보다도 따뜻하여/ 늘 부드러운 시/ 늘 고향의 된장찌개 같은 시/ 늘 어머니 옆에 앉아 조잘대는 아이 같은 시/ 그런 시를 쓴다지요? …”라며, 그의 시와 마음을 읊고 있다. 시 〈조송현 기자〉에서는 “하동 횡천면에서 어릴 적부터 천재로 알려졌지요/ …/ 대학원까지 졸업한 후 국제신문 기자가 되어/ 기자로서 또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지요/ 당신의 타고난 공부 머리는 세상과 사회에 기여한 바가 많지요/ …”라며, 그의 뛰어난 머리와 기자로서의 명망을 묘사하고 있다.
제4부의 시 〈울지마라〉에서는 “강가에서 미리 풀고 우는 여인이여/ 강가에서 신발 벗어놓고 흐느끼는 여인이여/ … / 그대만 그대만이/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다/ 아이 낳고 잘 사는 저 사람도/ 한때는 버림받은 여인이었다”라며, 섬진강이 1인칭 화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 〈저 여자를 우짜꼬〉에서는 “ … / 살다 보면 저 여자의 원통함보다/ 더 큰 아픔 슬픔 충격/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 / 당신들은 모르지만/ 난들 원통함 없을까/ 참다 참다 나도 한 번씩/ 장맛비 며칠 심할 때/ 몸부림쳐 세상을 뒤집어 버린다”라고, 역시 1인칭 화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서시 〈섬진강은 살아 있다〉에서 “전라북도에서 오백 리나 흘러 내려오는 섬진강은/ 얼마나 많은 생명을 먹여 살렸는지 모른다/ … / 비바람 몰아치는 밤이면/ 강물은 외로워 가슴앓이하며 울다가/ 날 밝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모습으로/ 살아있는 생명들 우울해하지 말라고/ 밝은 햇살 쪼이며 환하게 웃는다/ 죽은 것들 다 품어 제 가슴에 묻어주고/ … ”라며, 섬진강의 건강한 생명을 노래하고 있다.
조해훈 시인은 “시인은 자신이 붙박고 살아가는 지역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이다. 그러면서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주변의 사람들과 땅을 소재로 시를 쓴다.”며, “이번 시집에서는 제가 살고 있는 생명체에 대한 애정으로 한 수 한 수 지은 시를 모았다.”고 설명했다.
조 시인은 1987년 『오늘의 문학』 제2회 신인상으로 등단해 《생선상자수리공》·《내가 낸 산길》 등 여러 권의 시집을 펴냈다. 2021년 최계락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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