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산티아고 순례 이야기(22) 21일차 -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에서 엘 부르고 라네로까지

시간 갈수록 하늘 진한 잉크색으로
햇살 좋고 바람 감미로워 자고 싶어
마을 벽 그림 등 많아 미술관 같아
‘사아군’ 마을 카페서 커피·빵 먹어
10시간 반가량 걸려 30.6km 걸어

조해훈 승인 2025.01.18 11:15 의견 0
어제 묵었던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 마을의 사립 알베르게 1층 카페 벽에 걸려있는 옛 순례자의 모습. 사진= 조해훈

오늘은 2024년 11월 7일 목요일이다. 아침 7시쯤 일어나 씻고 배낭을 챙겨 알베르게 1층 카페로 내려갔다. 이 알베르게에서 잔 순례자들이 커피와 빵 등을 주문하고 있었다. 순서대로 기다렸다가 커피와 빵을 받아 들고 식당에서 먹었다. 아마 이 알베르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아주머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저녁 식사를 할 때 “한국에서 오셨습니까”라며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한국말도 조금 하셨다. 아침에 이 아주머니 혼자 카페 일을 하셨다. 웃는 인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필자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 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순례자들은 동작이 빨라서 벌써 다 먹고 출발했다. 필자 혼자만 남았다. 벽에 예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순례자의 모습이 걸려 있었다. 그 순례자의 모습을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아침에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만난 로봇처럼 생긴 순례자 형상. 사진= 조해훈

그런 다음 아주머니에게 “혹시 이 부근에 치약 파는 곳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어제 치약이 다 떨어졌다. 아주머니는 구석으로 가시더니 치약 몇 개를 들고 오셨다. 크기는 작았다. 아주머니는 “한 개 1유로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럼 4개만 주세요.”라고 해 4개를 샀다. 양치를 한 후 카페에서 나왔다. 아침 8시 25분쯤이었다. 마을이 작아 바로 순례길로 접어들었다. 길에 순례자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필자처럼 꾸물거리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5분 정도 걸으니 독특한 순례자의 형상이 있다. 마치 로봇처럼 철로 만든 순례자 모습이었다. 아침 8시 36분쯤 되어서야 완전히 날이 밝았다. 굽이진 저 길 멀리까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걸음이 어쩌면 그렇게도 빠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늘 꾸물대고 느린 필자가 비정상인 것 같다.

날이 훤히 개 순례길과 경작지에 햇살이 비치고 있다. 사진= 조해훈

하늘이 점점 잉크색으로 변하는 중이다. 길가의 나무에 달린 잎이 누렇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동안 지역에 따라, 나무에 따라 잎이 떨어지는 속도가 좀 다른 것 같다. 아무래도 지역의 고도와 관련이 있는 듯했다. 오늘 걷는 길은 고도가 801~881m이다. ‘까미노 닌자(Camino Ninja)’ 앱에 따르면 오늘 걷는 길은 거의 평지이다. 노란 나뭇잎이 환한 햇살을 받으니 더 노란빛을 띠었다. 이제 경작지 사이를 걷는 이런 길이 익숙해졌다. 앞뒤로 사람은 없고 맑은 하늘과 햇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고, 맑은 바람이 나와 말동무가 된다. 그리고 내 발이 내딛는 땅과 좌우의 밭도 나와 이야기를 나눈다.

오전 9시 34분, 마을에 순례자들을 위해 뜨개질한 작품들을 전시해놓고 있다. 사진= 조해훈

이제는 경작지 사이로 난 흙길을 걸으면 위안이 되고 마음이 편안하다. 밀을 벤 양쪽 밭이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느릿느릿 걸어도 괜찮아. 빨리 걸어 알베르게에 도착해 봤자 달리 할 게 없잖아.”라고 필자를 위로해 주는 듯하다. 오전 9시 15분, 저 멀리 앞에 한 순례자가 걷고 있다. 한참 먼저 간 순례자가 무릎이 아프거나 물집으로 걷는데 이상이 생겨 절뚝이며 걷는 경우가 있다. 천천히 걷는 필자도 종아리에 쥐가 날 때도 있고, 발목이 아파 걸음이 더 느려지기도 한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몸에 자그만 문제들은 달고 다닌다. 견딜만하니 아무 소리 없이 걷는다. 시간이 갈수록 햇살이 강해지는 까닭인지 하늘은 점점 진한 잉크색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하늘은 이처럼 진한 잉크색이 아니다. 오전 9시 22분, 트랙터로 갈아놓은 밭 너머로 집이 몇 채 보이고 자그마한 성당이 보인다. 가까이 가 담장 안을 들여다보니 공동묘지이다. 대리석 무덤이 여러 기 있다. 무덤마다 십자가가 있다. 스페인은 가톨릭 신앙이 아주 깊은 곳이다. 예전에는 종교와 삶이 하나였다. 그러니 마을마다 교회가 없는 곳이 없었다.

경작지 위의 하늘이 시간이 갈수록 진한 잉크색이 되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9시 27분, 자그마한 알베르게를 지난다. 문은 닫혀 있다. 11월인 지금은 비수기에 해당하여 순례자들이 거의 없는 편이다. 작은 마을인 이곳의 사립 알베르게에 묵을 사람이 없다 보니 알베르게는 문이 닫혀 있다. 오전 9시 32분 길가 나무에 줄을 이어 타월 크기의 다양한 색깔의 뜨개질 작품을 걸어놓았다. 순례자들에게 볼거리용으로 해놓은 것 같다. 저 것들을 하나하나 뜨개질한 분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것 같다. 오전 9시 32분,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교회 건물이 있는데 첨탑과 종이 없다.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 교회인 모양이다. 집들이 서부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길을 따라 띄엄띄엄 있다. 오전 9시 39분, 다시 흙길로 들어선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작지 저 너머로 하늘이 파란색으로 칠해놓은 것 같다. 오래전 그리스의 부속 섬에서 배를 타고 아테네로 가면서 본 지중해의 바다 색깔 같다. 그때 본 잉크색 바다를 지금도 기억한다. 특히 그리스 쪽 바다가 좋아 신문사 재직 시 ‘퇴직하면 저 섬에 살아야겠다.’라고 마음먹은 곳도 있었다. 한때는 지중해에 매료돼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을 안 가본 곳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필자도 참으로 많은 곳을 다녔다.

저 멀리 밭에 사냥꾼이 총을 어깨에 둘러맨채 개들을 데리고 사냥하러 가고 있다. 사진= 조해훈

그런데 지금은 스페인 산맥 지방을 걷고 있다. 그것도 흙먼지 이는 경작지 한 가운데를 터벅터벅 걷고 있다. “국내를 다니지 왜 그 먼 곳까지 가 걷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가톨릭이라는 종교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순례길을 걷는 초반에는 그러한 질문을 스스로 계속했다. 하지만 반을 지난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걷는다.”라는 게 정확한 말인 것 같다. 마치 다리에 배터리가 들어 있어 그 배터리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자동으로 걷는 것처럼 말이다.

오전 10시 2분, 밭 저 안쪽에 사냥꾼 아저씨가 총을 어깨에 메고 걸어간다. 사진을 클로즈업해서 보니 개 두 마리가 아저씨를 따라 서 간다. 아저씨가 토끼나 꿩 등을 총으로 쏴서 맞추면 개들이 뛰어가 물고 올 것이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보이지는 않는데 사냥하는지 ”땅!“ ”땅!’ 총소리가 나 좀 불안감이 엄습하는 경우가 있다. 하늘의 잉크색은 더욱 진하다. 오전 10시 16분, 저 앞으로 집이 몇 채 보인다. 저 마을에 사는 분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지 잘 모르실 게다. 그냥 원래부터 하늘은 잉크색이고, 경작지가 있고, 포근한 바람이 있다고만 여길 것이다. 마을 표지판이 서 있는데 이름이 길다. 팔렌시아(Palencia) 주의 마지막 마을인 ‘산 니콜라스 델 레알 까미노’(San Nicolas del Real Camino)이다. 마을이 크지 않다. 규모가 크지 않는 교회가 있다. 어느 집 입구 대문 옆에 산티아고 상징인 조개껍질을 위에서 아래로 7개를 붙여놓았다. 벽체를 흙으로 새로 한 걸로 보아 지방정부에서 빈집을 이렇게 순례자들을 위해 꾸민 것으로 짐작됐다.

마을의 어느 집 대문 옆에 산티아고 상징인 조개껍질을 위에서 아래로 쭉 박아놓았다. 사진= 조해훈

독특한 표지석이 서 있다. 사진= 조해훈

순례길은 또 이어지고 저 앞에 남녀 순례자가 걷고 있다. 오전 10시 48분, 제단처럼 꾸며놓은 산티아고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 위쪽에 조개 문양을 만들어 놓았다. 표지석 뒤쪽에 레온(Leon) 지방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바람이 얼마나 감미로웠으면 바람에서 향기가 나는 듯했다. 햇살도 너무 좋아 긴 나무 벤치가 있으면 누워 이 자연을 한껏 만끽하며 한숨 자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일었다. 그래도 걸어야만 했다. 누군가는 ‘길이 있으니 걷는다.’라고 했다. 그렇다. 길은 걸으라고 있는 것이다. 흙길에 키 작은 풀의 그림자가 길게 이어졌다. 길의 너비는 2m가 채 되지 않는다. 길의 반은 순례자들이 걸은 흔적이 있고, 길의 반은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탄 순례자들의 흔적이 있다. 걷느냐, 자전거를 타느냐, 오토바이를 타느냐 중에서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나름대로 장단점을 갖고 있다.

갈림길에서 표지를 보고 걷는다. 가끔 표지가 없는 경우 헷갈릴 때가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58분, 순례길은 도로 옆으로 나 있다. 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난 길을 걸으면 훨씬 수월하고 시간이 단축되는 장점이 있다. 대부분 순례자는 걷기에 편해 이런 길이 “더 좋다.”라며 선호하는 편이지만, 필자는 이런 길을 좋아하지 않는다. 경작지 사이의 흙길에 비해 생각이 많이 들지 않는다. 가끔가다 지나는 차량에 손을 흔들어줘야 하고, 큰 차가 앞에서 다가오면 약간의 불안감도 없지 않다. 저 멀리 도로 옆에 마을이 보인다. 그런데 산티아고 길을 가리키는 표식은 도로를 따라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가라고 되어 있다. 둘러서 가면 시간이 더 걸릴 테지만, 그렇게 표식을 해놓은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른쪽으로 흙길을 따랐다. 그러니까 도로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마을 들어가기 전에 양쪽에 부조된 인물상 사이를 지난다. 사진= 조해훈

오전 11시 27분, 폐 교회가 덩그러니 있다. 교회가 잘 운영되었을 적엔 교회 옆에 마을이 있었을 것이다. 항상 그러하듯 산티아고 길에는 마을 중간에 교회가 있다. 오전 11시 32분, 교회를 지나니 문처럼 생긴 양쪽에 ‘현인(賢人)’인지 누군지는 모르지만 부조(浮彫)된 인물이 서 있다. 양쪽의 부조 인물 중간으로 통과하려니 약간 머쓱했다. 어떤 의미로 이런 인물상을 새겨놓았을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처음 보는 조형물이다. 오전 11시 35분, 길가 나무들의 노란 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떨어진 나뭇잎을 보고 있노라니 필자의 머리와 어깨를 내리쬐는 햇살이 마치 노란 색을 띤 듯 느껴졌다. 오전 11시 46분, 앞에서 트랙터가 한 대 다가오고 있다. 손을 흔들어 주니 운전석에 앉은 분도 손을 흔들어 주셨다. 필자 옆을 지나는데 보니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다.
오전 11시 51분, 저기 앞에 마을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긴 벽에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그린 듯 순례자들의 여러 모습을 그려놓았다. 밝고 현대적인 그림 그리기 기법이다. 오전 11시 58분, 공장 벽인지 긴 벽에 이번에는 마치 펜화 기법으로 그린 듯한 순례자들의 그림들이 쭉 그려져 있다. 걷는 순례자의 모습도 있고, 반갑게 서로 포옹하는 순례자들의 모습도 있다.

한 마을에 들어서니 벽에 애니메이션 기법의 순례자 모습이 밝게 그려져 있다. 사진= 조해훈
또 다른 형식으로 벽에 그려진 순례자들의 모습. 사진= 조해훈
쇠로 만든 또 다른 양식의 순례자 모형이 세워져 있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4분, 독특한 순례자의 형상을 만났다. 철 조각품 같다. 지팡이는 쇠 파이프로, 손과 다리는 굵고 네모진 쇠로, 몸통은 둥글게 만들었다. 이런 순례자 형상 사진만 따로 모아도 재미있겠다 싶다. 낮 12시 7분, 이번에는 늙은 할아버지 순례자 그림이 있다. 마치 야외 미술관의 작품들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 그림을 지나니 도로 아래는 철길이다. 주택가 도로를 따라 걷는다. 마을 길이 도로여서 생각보다 마을이 큰 것 같았다. ‘사아군’(SAHAGUN) 마을 표지판이 서 있다. 마을의 도로가 제법 넓다. 마을 주민들이 오간다. 낮 12시 13분, 갈림길 중간에 카페가 보인다. 아침에 카페에서 출발한 지 4시간이 지났다. 배가 고팠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방을 주문하여 받아서 들고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옆 테이블에 그제 산타 마리아 수녀원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같은 방에서 잠을 잤던 외국인 연인을 만났다. 밝은 곳에서 제대로 보니 남자와 여자 두 사람 다 착하게 생겼다. 그들과 필자가 서로 인사를 했다. 햇살이 너무 좋았다. 연인들은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필자는 아직 커피를 다 마시지 않았다. 야외 테이블에 다른 손님들이 없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시아군' 마을의 다리 아래로 철길이 이어져 있다. 사진= 조해훈
시아군 마을 길에 주민들이 다니고 있다. 사진= 조해훈
시아군 마을에 있는 카페. 필자는 이곳에서 점심으로 커피와 빵을 먹었다. 사진= 조해훈
시아군 마을 카페에 앉아 커피와 빵을 먹고 있는 필자. 사진= 카페 종업원

낮 12시 43분, 카페에서 나와 또 길을 걸었다. 카페에 30분을 앉아 있었다. 햇살이 잘 들어서인지 마을이 밝았다. 오래된 마을이다. 저 앞에 높이 솟은 성당이 보인다. 낮 12시 53분, 어느 집 벽 옆에 어르신 세 분이 서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벽에는 산티아고 조개 문양과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과 어르신들의 모습이 재미있게 잘 어울린다.

시아군 마을의 벽화 앞에서 어르신 세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사진= 조해훈

오후 1시 2분, 길가에 카페가 또 있다. 주민 몇 분이 카페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고 그 앞으로 배낭을 짊어진 여성이 걸어간다. 순례자는 아닌 듯하다. 좀 전에 커피와 빵을 먹은 터라 이 카페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한 집의 벽에 ‘SAHAGUN’이라는 지역 명이 적힌 네모 판에 산티아고 방향 표지가 새겨져 있다. 오후 1시 10분, 마을을 벗어나 계곡 위 다리를 건넜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계곡의 물빛도 잉크색이다. 산티아고 사람들이 부드럽고 온순한 이유가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바다 크다는 인상을 받았다. 흙길에 노란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오후 햇살을 받아 더 노랗게 보인다. 자연의 하나하나가 필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혼자 뒤처지어 걸어도 심심하지 않은 게 자연 덕분이다. ‘칼사다 델 코토’(CALZADA del coto)’ 마을 표지판이 있다. 이 마을에서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필자는 ‘엘 부르고 라네로’(El Burgo Ranero) 마을로 가야 해 아랫길을 택했다.

'칼사다 델 코토' 마을 표지판. 이 마을에서 길이 갈라진다. 필자는 아랫길을 택해 걸었다. 사진= 조해훈

아랫길로 접어들어 걸었다. 쭉 뻗은 오솔길로 옆에는 아직 누런 잎이 달린 나무들이 서 있다. 갑자기 ‘청춘’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나무들의 수령이 젊어 보이는 데다 젊은이들이 걸으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젊음에는 ‘청춘’·‘희망’·‘아름다움’도 있지만, 유난히 ‘아픔’이 많은 시절이다. 그런 아픔을 거쳐야만 진정한 어른이 되고,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필자는 늘 의문스러운 게 있다. 젊었을 적이나 지금이나 삶의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하여 ‘젊음’이란 시기가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경제적 어려움이 심했던 학창 시절을 거쳐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필자에겐 ‘청춘’·‘아픔’이란 단어가 다소 생소하다. 그런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늘 ‘장남 의식’이 자리잡고 있어 더 그렇게 생각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 마을로 들어가는 쇠로 만든 아치. 사진= 조해훈

여하튼 오후 3시 45분,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Bercianos del Real Camino) 마을 입간판이 서 있다. 오후 3시 48분, 쇠기둥으로 만든 아치가 있다. 순례자들이 이 아치를 통과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아치를 통과하니 “고생 많아요. 우리가 환영해 줄게요.”라는 격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후 5시 54분, 순례자의 무덤이 있다. 흰색의 묘비와 십자가가 서 있다. 잠시 묵념했다. 순례자가 가톨릭 성직자였든, 가톨릭 성도였든, 필자처럼 일반 순례자든 걷다가 길 위에서 죽음을 맞았다면 그다지 억울할 게 별로 없었을 것이다. 순례를 나선다는 것 자체가 길 위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고 떠나니 말이다.

마을 입구에 순례자의 묘가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4시 34분,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 마을 한 가운데다. 늦은 오후 햇살이 깔리고 태양이 많이 기울어 지평선 바로 위에 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서쪽에 위치하여 해가 빨리 진다. 오후 4시 44분, 마을을 벗어났다. 길은 도로를 따라 이어지고 있다. 표지석에 콤포스텔라까지 331km 남았다고 적혀 있다. 길가 밭에 트랙터가 멈춰있고 농부 아저씨가 그 옆에 서 있다. 지나치며 인사를 하니, “뷰엔 까미노!”라고 하면서 손까지 흔들어 주셨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몇 마디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지만 갈 길이 멀다. 좀 있으면 해가 넘어갈 텐데 알베르게는 한참을 더 가야 한다.

순례길의 종착지인 콤포스텔라성당까지 331km 남았다고 표지석에 적혀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5시 39분, 벌써 왼쪽 저 멀리 석양이 붉게 비친다. 오후 5시 46분, 해가 지평선으로 떨어지기 일보직전이다. 주변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강하다. 오후 6시 1분, 마침내 해가 떨어졌다. 지평선 위에 붉은 기운이 약간 남았다. 사위가 조금씩 어두워지니 마음이 조금씩 바빠진다. 알베르게에 도착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해가 지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야만 한다. 오후 6시 18분, 마침내 오늘 목적지인 ‘엘 부르고 라네로’(El Burgo Ranero) 마을 입간판이 길가에 서 있다.

해가 서쪽으로 떨어지기 직전이다. 사진= 조해훈

오후 6시 24분, 마을에 들어서니 껌껌하다. 3분가량 더 가니 알베르게가 있다. 마을의 집이라고 해봐야 길가에 몇 채만 있을 뿐이다. 마을의 규모가 작아 알베르게 역시 작았다. 앞에 알베르게 표지판이 없다면 일반 가정집이다. 알베르게가 낡고 허름하다. 숙박료는 없다. 기부제 형식이다. 2층 방으로 들어갔다. 두어 번 만난 적이 있는 대구에서 온 부부가 안쪽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문 앞에 있는 필자의 침대에 배낭을 풀었다. 작은 방에 침대 4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씻고 1층 홀로 내려갔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주인아저씨와 손님 한 명이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고 있다. 다행히도 이 알베르게는 와이파이가 잘 되었다. 무척 피곤하였다. 글 쓸 게 있었다. 스페인 일회용 차를 우려먹으며 노트북으로 글을 썼다. 밤 9시가 되니 불을 끈다고 했다.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침대에 가 잠을 청했다.

해가 지고 껌껌한 길을 걸어 숙소가 있는 '엘 부르고 라네로' 마을에 도착했다. 사진= 조해훈

오늘 30.6km를 걸었다. 10시간 반가량이 소요됐다. 생장에서 여기까지는 총 424.7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