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억새를 베어내야 차나무가 드러난다. 사진= 조해훈

오늘은 2025년 4월 3일 목요일이다. 새벽 5시에 잠이 깨 일어나 거실에 앉았다. 아직 바깥은 어둡다. 차산(茶山)에 올라갈 수가 없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 차를 마시면서 혼자서 조용히 『논어』 제5 ‘공야장(公冶長)’편과 제6 ‘옹야(雍也)’편을 암송(暗誦)했다.

그러는 사이 날이 희붐해졌다. 수돗가에서 낫을 갈아 산으로 올라갔다. 어제 어둑해질 때까지 베다 만 잡풀들을 또 베어야 한다. 아래 차밭을 통해 위 차밭으로 오르기로 했다. 그런데 아래 차밭 맨 오른쪽의 차나무들 위에 칡넝쿨 등이 휘감겨 있다. 낫으로 칡뿌리와 가시 등을 자르다 보니 1시간 반이 후딱 지나갔다. 그런 후 위쪽 차밭의 원두막으로 올라왔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작업복과 베 가방을 뒤져보아도 물이 없었다. 또 깜빡하고 물을 가지지 않고 올라온 것이다.

베어낸 잡풀들의 무더기들이 차산 곳곳에 있다. 일 마칠 때 낫과 팔로 움켜쥐고 낭떠러지에 버린다. 사진= 조해훈

할 수 없이 원두막에서 내려가 위쪽으로 올라갔다. 어제 벤 잡풀들의 무더기가 몇 군데 있다. 몇 번 아래 낭떠러지로 가져다 버렸으나 어제 날이 어두워 다 치우지 못한 것들이다. 일단 풀들을 베기 시작했다. 경사지인 데다 비가 내리지 않아 흙이 퍼석거렸다. 해마다 베어내도 웬 잡목들도 그렇게도 많이 올라오는지 알 수가 없다. 멧돼지가 칡뿌리를 캐 먹으려고 파놓은 구덩이에 잡목의 뿌리들이 길게 이어져 있다. 낫으로 몇 번씩 쳐 그 뿌리들을 제거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잘라내 굵지는 않으나 칡넝쿨이 왜 이리도 많은 걸까? 낫질을 사정없이 했다. 잘라낸 잡풀과 잡목, 칡넝쿨 등을 한군데 모으니 금방 한 무더기가 되었다. 파스를 발라놓은 오른쪽 팔목이 벌써 쑤셨다.

허리가 아파 잠시 일어서 오른손등으로 허리를 툭툭 치며 폐모노레일 건너 저쪽을 쳐다보니 기가 찼다. 억새 등이 덮고 있어 아예 차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이곳 폐모노레일 안쪽의 풀이라도 다 베야겠다고 생각했다.

차산의 일은 이달 중순쯤 차를 딸 때까지 계속 해야 한다. 9년째 이 작업을 하고 있어 대충 가늠할 수 있다. 대개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된다. 물론 1년 내내 짬이 날 때마다 올라가 관리를 한다. 마을 사람들조차 평소에 “아이, 차밭에 뭣 하러 그렇게 자주 올라가? 일할 것도 없을 낀데.”라고 말한다. 평지의 밭에 차나무를 심어 가꾸는 경우는 찻잎을 다 딴 후 6월께 웃자란 차나무를 예초기로 잘라주면 그다지 할 일이 없다. 하지만 필자의 차밭은 그렇지 않다. 차밭이 야산 위쪽 높은 곳에 있고, 낫으로 작업을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여러 차례 언급해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차산에서 일을 하다 필자의 모습을 셀카로 촬영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작업복을 벗은 상태다.

아래 차밭의 잡풀과 잡목 등을 제거한 후 제법 정리가 되자 차밭에 길을 다시 냈다. 찻잎을 따기 위해 차밭 사이를 다닐 수 있는 길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만든다. 차나무가 옆으로 자라면서 길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위쪽 차밭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장화를 신고 작업복을 입고 있어 그다지 큰 불편은 없지만 혹여 다른 사람들이 와 찻잎을 딸 때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그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차산에 올라가 낫질을 해 아래 차밭과 위쪽 차밭의 중심 차나무들이 깔끔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작업해야 할 일이 많아 날마다 어두워질 때까지 낫질한다. 내려오면서 원두막에 잠시 앉아 계곡 건너 용강마을에 가로등과 집들에 불이 켜진 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저 불 켜진 집들의 사람들도 낮 동안 농사 일을 하거나 여러 일을 본 후 이제 집에 들어갔을 것이다. 지금 시간이면 아마 휴식하면서 저녁을 먹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마음이 따스해진다. 필자의 마을인 목압마을이나 용강마을이나 지리산 산촌 주민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용강마을은 필자의 마을보다 규모가 커 주민들이 더 많다. 그러고 보니 용강마을에 필자의 집에서 거의 직선으로 여성 산악인인 남난희 씨가 산다. 그녀는 아마 농사를 짓지 않으리라.

차나무를 덮고 있는 저 잡풀들도 베어내야 한다. 사진= 조해훈
잡풀들을 베어내니 차나무들이 깔끔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조해훈

필자는 매일 차산에서 일하며 낫질을 잘못해 다리에 상처가 나거나 가시에 얼굴이 긁히는 등 한 군데라도 상처가 난다. ‘이 미물들도 자신들을 낫으로 잘라 생명을 없애려고 하니 마지막 저항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두 해도 아니고 해마다 낫질을 하면서 그런 걸 느꼈다.
오늘도 아침부터 차산에서 일을 하면서 생각했다. 사실 이렇게 고생을 해 차밭을 가꾸어도 찻잎을 거의 따지 못한다. 필자 외는 찻잎을 딸 손이 없다. 게다가 필자는 손이 느려 하루 종일 찻잎을 따 차를 만들어도 20, 30g밖에 만들지 못한다. 차밭 관리를 하지 않으면 정글(?)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냥 하는 것이다. 지인들은 “그 자체가 수행이다.”라고 말을 한다. 필자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수행 단계를 넘어 고행’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어둑해질 무렵 일을 마치고 내려가기 전에 원두막에 잠시 앉아 불이 켜진 건너편 용강마을을 바라본다. 사진= 조해훈

얼굴은 볕에 그을려 새카맣다. 특히 목부분이 더 검다. 머리를 깎으러 가면 “목이 왜 이렇게 새카매요?”라는 소리를 듣는다. 필자는 며칠 전 지인과 문자를 주고받다가 농담 삼아 “필자의 업보 때문에 이 일을 합니다.”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벌써 차산의 일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그냥 추위가 시작되면 습관적으로 산에 올라가 잡풀과 잡목들을 베기 시작한다. 차산에 올라 일을 할 때 마음이 가장 평화롭고 고요해진다.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아마 그런 마음의 고요를 얻으려고 겨울부터 봄까지 힘든 차산의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