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91 가을의 노래 - 흐린 가을날의 호수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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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1 17:04 | 최종 수정 2021.10.2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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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하순 비가 그친 오후, 비에 젖은 낙엽을 한참이나 밟고 도착한 호수, 구름도 하늘도 나지막이 내려앉고 엎드린 산모롱이와 산 그림자도 표정을 잃고 무심한 호수의 흐릿한 수면에서 칙칙하고 노곤한 우울(憂鬱)이 묻어납니다.
누렇게 물든 잡초를 딛고 아카시아덩굴을 감고 오른 파란 칡덩굴도 제 무게를 못 이겨 휘어지고 건너편 수면의 키다리 현사시나무 그림자도 그냥 외롭습니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도 철철이 꽃이 핀다는 것도 결국은 이렇게 쓸쓸하고 우중충하며 우울한 것이 본바탕일 것이고 인간의 삶도 이와 다름없을 겁니다.
그래도 무언가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분은 수면의 산 그림자 부분을 확대해서 네 마리의 물오리를 찾아보세요. 자세히 살피면 세상이나 삶이나 늘 작은 숨구멍은 있나 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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