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74 가을의 노래 - 맨드라미 피고 지고

이득수 승인 2021.10.04 22:16 | 최종 수정 2021.10.05 12:12 의견 0
맨드라미 [사진 = 이득수]

전에 말씀 드린 대로 우리 집 화단에는 토종꽃이 귀염을 받지 못하는 편이라 장마가 끝나고 풀을 뽑으면서 아슬아슬 살아남은 맨드라미 한 포기가 꽃을 피웠는데 잎아 무성한 서양꽃에 치어서 꽃이라고 핀 것이 마치 처음 새벽닭 울음을 배우는 사춘기 수평아리의 벼슬처럼 빈약하고 서글퍼 위풍당당한 수탉의 모습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데 쌀을 가지러 장촌리 넷째누님 집에 갔다가 뜻밖에 아주 제대로 핀 맨드라미꽃을 만났습니다. 일흔이 넘은 데다 올봄에 매형을 보내면서 아무 낙이 없어 화단이나 텃밭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바람에 해마다 피던 자리에 커다란 꽃이 다시 피어난 것입니다.

맨드라미꽃은 꽃의 모양이나 빛깔이 아주 고운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자주 빛의 뭉툭한 꽃송이가 자세히 보면 시골마을에서 흔히 만나는 빨래터의 아주머니나 쟁기질하는 농부의 쉰 목소리처럼 어딘가 익숙하고 정겨운 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멀리 떠난 사람은 향수를, 나이 든 사람은 유년시절을 회상하기에 딱 좋겠지요. 맨드라미가 들어간 구성진 노래 <비 내리는 고모령>의 2절을 올립니다.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던가
물방아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던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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