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이 든 사람의 양식(糧食)인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의 뇌는 태어나서 최초로 접한 환경, 즉 어머니의 냄새와 촉감, 조금 자라서는 그 음식과 목소리에 대한 절대적인 집착을 보이게 되는데 그걸 심리학적으로는 <기억의 고집>이라고 한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의 정서에는 자기를 낳고 길러준 어머니에 대한 기억 또 그 시절에 접했던 환경인 자기가 살던 마을의 오솔길이나 들판, 기찻길이나 능선, 학교 가던 길과 징검다리, 심지어는 마을에 딱 하나밖에 없던 목욕탕의 굴뚝에 대한 기억이 향수의 밑바탕이 된답니다.
그런데 그런 일률적인 그리움은 너무 밍밍해 저는 오늘의 주제로 <문득 그리움>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남해고속도로나 경전선열차를 타고 함안군 산인면을 지나치다 혹시 <문득 그리움>이란 찻집을 본 일이 있는가요?
제가 한 쉰쯤 될 때 서구 부민동동장을 지내는데 어떤 묘령의 여성이 제 시집 <비오는 날의 연가>가 너무 좋다고 꽃다발을 보내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출처를 파악하니 법원 앞에서 해장국과 국수를 파는 조그만 식당의 30대 주인으로 키가 늘씬하고 눈빛이 서글서글한 문학소녀출신이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가끔 직원들과 해장국이나 국수도 팔아주곤 했는데 한동안 안 보이더니 아까 말한 산인면의 그 <문득 그리움> 찻집을 개업했다고 한 번 놀러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게 벌써 20년도 더 전의 일인데 함안에서 산인면을 향한 터널을 지나면 경전선과 국도사이에 요술궁전처럼 자리 잡은 멋진 찻집을 저는 수십 번 지나치면서 아직 단 한 번도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궁색한 변명 같지만 시인이란 간판으로 문단에 출입하며 여러 권 시집을 낸 자신이 여태 단 다섯 글자의 상호, <문득 그리움>보다 울림이 좋은 글 한 편을 남기지 못한 자괴심,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모국어에 대한 부끄러움을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문득 그리움>이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사람의 가슴언덕을 가장 잘 두드리는 울림 좋은 찻집이름이 아닐지...
...문득 그립다는 것은 우리 삶의 통상적인 그리움이 아닌 아주 짧고 선명한 기억, 말하자면 어느 간이역을 지나치다 본 어지럽게 눈부신 코스모스군락, 대합실에서 마주쳤던 목덜미가 눈부시게 하얀 소녀의 눈망울, 휴전선에서 보초를 서다 본 철책선 위에 걸린 달, 여고시절 음악이나 영어를 가르치던 잘 생긴 총각선생의 웃음이나 목소리 같은 것, 말하자면 이제 현실에서는 도무지 접할 수 없지만 기억의 가장 내밀한 골짜기에 자리 잡고 문득 한 번씩 반짝이는 그런 그리움 말입니다.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이 가을에 <문득 그리움>을 한두 번 느껴본다면 얼마나 황홀한 삶이 될까요?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제가 한 방법을 제시해볼까 합니다.
평소의 삶과 가장 동떨어진 세계, 음악회, 박물관, 미술관에 가서 라스베이거스에 간 부시맨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멍하니 한 동안을 보내보는 것입니다. 그 백지의 상태가 한참 지속되면 어쩜 우리 사는 세상의 공터나 삶의 쉼표 같은 자유로움과 그리움이 생겨날 수 있으니까요.
자주 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아내와 같이 오페라나 음악회에 가서 도무지 알 수 없는 멜로디와 율동, 낯설지만 황홀한 조명과 소음 속에 한두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서 마치 아프리카나 시베리아 먼 이국(異國)을 여행한 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고 누구랑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수십 년을 같이 살면서 그 낯선 여행까지 함께 한 아내, 그 때 마주치는 은근한 눈빛과 손바닥에 고인을 촉촉한 땀방울, 그게 바로 <문득 그리움>을 되살리는 길인 것 같았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문득 그리움> 중에서 가장 또렷한 기억은 아마도 지금의 아내와 남편을 처음 만난 날의 설렘과 결혼을 약속하기 전까지의 하룻밤에 열두 채도 더 집을 짓던 공상과 울렁거림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가장 황홀한 그리움을 되살리기 위해 여러분 모두 이 가을에 한 번쯤 음악회나 오페라 같은 낯선 세상에 빠져보는 것이 어떨지요?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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