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69 가을의 노래 - 밤윷인지 윷밤인지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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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9 22:44 | 최종 수정 2021.10.0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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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반질반질 작고 귀여운 밤을 한줌 주었습니다. 세상에 뭐 이런 조그만 밤이 다 있나, 먹을 것도 없겠다 싶으면서도 옹골똥골 옹골차고 단단해 손바닥에 놓고 한참 들여다보니 작으면 작은 대로 곱고 아름다워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유리구슬이 다 떠오르며 비로소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묘(妙)자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중국 장가계에서 요렇게 작은 군밤을 구워 “천원! 천원!”을 외치던 남루한 묘족(苗族)의 아이가 생각나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어디에서 밤윷인지 윷밤인지 들은 기억이 나서 사전을 찾아보니 밤톨만큼 작게 깎은 윷을 밤윷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굳이 나무를 깎아 밤윷을 만들기보다 요 작은 밤 자체로 윷으로 던져도 훌륭한 윷가락이 될 것 같았습니다. 바닷가사람들이 참고동 껍데기로 윷을 노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튼 알밤은 가장 가을의 정취를 잘 나타면서도 자체로 단단하고 반질반질하며 가장 아름다운 과일이자 자체로 탄수화물을 포함한 먹거리로 조물주의 창조물중에서 아주 특별한 명품입니다. 밤이 익어가는 가을, 밤송이가 벌어져 툭툭 땅에 떨어지는 정경처럼 모두들 풍성한 가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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