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64 가을의 노래 - 꽈리열매 꽃꽂이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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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13:22 | 최종 수정 2021.09.2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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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꽃들이 다 예쁜 것 같지만 벼나 보리, 옥수수처럼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좀체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 하는 꽃도 많고 사과나 복숭아처럼 꽃은 물론 열매까지 참으로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모과처럼 꽃은 예쁘지만 열매가 못난 경우도 있습니다.
또 다래나 밤처럼 꽃이 지저분한 경우, 도토리처럼 꽃이 못 생긴 경우도 있는데 붉고 고혹적인 꽈리는 꽃이 언제 피었는지 그 존재도 모를 정도로 특별히 열매가 예쁜 경우라 할 것입니다.
그 꽈리는 비록 식용은 아니더라도 꽈리(뚜깔)로 부는 특별한 용도가 있는데 요즘 아이들이 아무도 뚜깔을 불지 않자 그 황홀한 열매가 너무 아까운 아내가 뚜깔 열매를 가득 따다 꽃꽂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였습니다. 무심코 <신임사관 구해령>이란 사극(史劇)드라마를 볼 때였습니다. 피부가 거칠고 목소리가 걸걸한 내시와 대군(大君)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인데 하필 텔레비전화면 옆에 놓인 꽈리 열매 꽃꽂이가 놓여있었습니다.
마치 일부러 소품으로 배치한 것처럼, 아니 사극속의 내시가 대군을 위해 설치한 것처럼 장중한 궁중분위기에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는 꽈리 열매 꽃꽂이, 저 황금빛 꽈리야말로 사극 속의 조선시대나 훨씬 더 전부터 내려오는 민족의 꽃이며 열매인 것 같았습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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