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67 가을의 노래 - 명촌리 할매 어부(漁夫)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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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7 15:46 | 최종 수정 2021.09.2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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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는 <처녀 뱃사공>에 필적하듯 명촌리의 황금벌판에 미꾸라지 통발을 놓는 할매어부가 떴습니다.
이미 팔순이 넘어 자기 몸도 가누기 힘들어 유모차에 의지한 할머니가 기다시피 볏논에 들어가 통발을 놓고 있습니다. 전부터 안면이 있는 분이라
“할매, 미꾸라지 좀 들었능교?”
“아임더. 미꾸라지도 사람을 알아보는지 우리 할배가 건강할 때는 잘도 잡히던 놈이 통...”
“힘 드는 데 장에 가서 사다 끓여드리지요?”
“할배가 몸은 아파도 입맛은 그대로라 양식미꾸라지는 절대로 안 먹어.”
“그래 몇 번이나 끓이 묻능교?”
“사나흘 잡아야 한 번 끓이는데 호박잎 하고 정구지만 넣고 훌렁하게 끓이면 입이 합죽한 할배가 얼매나 맛있게 묵는지...”
하며 역시 어금니가 빠진 합죽한 볼로 미소를 띠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지난 해 칼치못 뒤에서 아픈 영감 끓여드린다고 날마다 나락 논을 설설 기던 할머니는 작년에 영감이 돌아가셔서 올해는 미꾸라지를 잡지 않는데 말입니다.
우선은 통발에 미꾸라지가 좀 들고 다음은 영감할멈이 맛있게 추어탕을 먹고 마주 보고 합죽하게 웃으면서 해로기간이 좀 더 길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그만 할머니또래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둘째누님이 생각나 먹먹한 기분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사진은 유모차로 들에 나오는 할머니와 검정 고무신을 벗어놓은 어로본부의 모습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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