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58 가을의 길목 - 또 한 번 코스모스
이득수
승인
2021.09.09 13:14 | 최종 수정 2021.09.17 13:44
의견
0
평생을 그려도 단 한 점을 팔아보지 못하고 세상 어느 여자도 곁에 머물러 주지 않았던 고독한 화가, 이승에 살다간 화가 중에 가장 외로운 화가가 파스텔로 은하수를 그리다 문득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린 걸까? 저렇게 어지럽게 번져가는 코스모스의 물결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닮았다. 아니 그 별들을 다 쏟아놓은 것만 같다.
오늘은 해가 지면 공연히 슬퍼지고 싶다. 환각(幻覺)과 환청(幻聽)이 아롱진 그 어지러운 우울 속에서 제 손으로 귀를 잘라도 끝끝내 못다 푼 절망 같은 목숨을 마침내 끊어버린 외로운 사내 반 고흐의 환상(幻像)과 잔영을 위해 울어주고 싶다.
또 커다란 생선 대신 거대한 절망을 낚아 작살 던지듯 제 심장에 라이플을 쏘아버린 텁석부리 사내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위해서도 울고 달이 뜰 때쯤이면 장미가시에 손가락을 찔려 죽은 가녀린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위해서도 울어봐야지.
그리고 나만 보면 눈물을 글썽이던 말년의 내 큰 누님, 벌써 별이 된지 12년이나 되는 가장 조선(朝鮮)적인 한 여인의 가여운 영혼을 위해서 울어야지. 신산(辛酸)한 내 인생도, 영혼도, 사랑마저도 저렇게 나부끼는 코스모스처럼 얼룩져야지...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