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47 여름과 가을 사이 - 분홍 미인 부레옥잠 꽃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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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7 20:15 | 최종 수정 2021.09.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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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장마 같은 축축한 날씨의 변화에 가장 예민한 동물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조금만 움직이면 날개가 비에 젖는 잠자리나 모기 같은 곤충일 거고 그 중에서도 날개가 큰 호랑나비가 더 예민할 것입니다. 어쩌다 잠간 비가 개이고 햇빛이 날 듯 말 듯한 사이에 아직도 채 덜 마른 날개를 펴고 이제 부시시 눈을 뜨는 꽃을 찾아 재빨리 배를 채워야 하니까요.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놈은 매미입니다. 무려 7년이나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애벌레나 번데기로 지내다 단 보름 남짓 숲속을 날아다니며 짝짓기를 해야 하는데 미처 짝도 찾지 못하고 장마를 맞이한 매미들의 울음이 오죽 절박할까요?
모처럼 비가 멎어 화단과 밭을 둘러보며 쓰러진 꽃나무도 세우고 고추도 따다
“어머나! 이게 뭐야?”
소리치는 아내를 돌아보니 수련이 가득 피었던 대형 고무통에 분홍빛도 선명한 부레옥잠이 꽃 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옥잠화는 우리 어릴 적 유리컵에다 빨간 금붕어를 한 마리 사다 키울 때 같이 넣어주던 초록색 잎이 동그랗고 잎줄기가 통통하던 수생식물입니다. 늪이 적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지상의 주요 늪지대를 점령하며 대식가 하마를 먹여 살리는 생태계의 일꾼입니다. 가까운 김해의 수로나 창녕의 우포늪에 많이 분포하고 일반 가정의 화단에도 옥잠화라는 사촌이 있고 산에 가면 나물로도 먹는 한 8촌쯤 되는 비비추(언양지방에서는 배뱁추라고도 함)도 있습니다.
꽃에 관심을 가지면서 참 특이한 빛깔과 모양의 꽃을 많이 보아왔는데 오늘의 부레옥잠도 상여에 붙이는 지화(紙花)처럼 하늘하늘 눈이 부신 분홍빛 긴 꽃잎을 한 무더기를 앙코르와트의 사면불(四面佛)같은 모양으로 둥글게 뭉친 꽃타래(朶)가 참으로 아름답지만 자꾸만 꽃상여를 연상시켜 섬뜩하기도 합니다.
평범한 도시인으로는 좀체 보기 힘든 부레옥잠 꽃을 올립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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