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우선 생물학적 나이(주민등록상의 나이)가 40세 이상이어야 한다. 1962년 헌법에 명시된 이래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인한 평균 수명의 연장과 생체 나이를 고려하면, 현재의 60세와 어금버금할 것이다.

반면 선거 연령은 점진적으로 하향되어 왔다. 마침내 2022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의 피선거권 연령은 기존 만 25세에서 만 18세로 대폭 하향되었다. 이는 청년층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조치이다. 하여 18세의 고교생이나 대학생이 서울시장이나 부산시장이나 경남도지사 등에 입후보할 수 있다.

한데도 왜 대통령 피선거권은 40세 이상으로 붙박아 둔 것일까? 이에 대해 국민 대부분은 거부감을 갖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대통령’이란 용어 자체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통령은 영어 단어 ‘president’의 번역어이다. president는 라틴어 ‘praesidens’에서 유래한다. ‘앞에 앉아 주재하다’라는 뜻이다. 원래는 회의나 모임을 주재하는 사람, 곧 ‘주재자’를 의미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단어는 국가나 조직의 최고 책임자, 즉 통솔하고 이끄는 인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발전했다. 회장, 총재, 의장, 사장, 대학 총장이나 학장도 모두 ‘president’라 불린다.

우리는 왜 president를 ‘대통령大統領’으로 번역했을까? ‘統’에는 ‘거느리다’, ‘통괄하다’, ‘통솔하다’, ‘한데 묶다’, ‘다스리다’, ‘살피다’ 등의 뜻이 있다. ‘領’은 ‘가장 요긴한 곳’, ‘우두머리’ 등의 뜻이다.

번역 당시나 1960년대는 권위주의 시대였으므로 1962년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뜻은 ‘(모든 국민을) 크게 통솔하는 우두머리’을 뜻했을 것이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이다. 언어는 시대를 반영한다. 시대가 변하면 언어의 뜻도 변화한다.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시대로 변화했다. 하여 그에 걸맞게 대통령의 뜻도 변화한다. ‘(모든 국민)을 크게 살펴서 한데 묶어 이끄는 지도자’가 민주시대의 대통령 뜻일 것이다.

국회의원은 1/300로서 자기 지역이나 지지자의 뜻을 대변한다. 지자체장도 관할 지자체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 국가 전체로서 보면 ‘일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대통령은 국가, 곧 모든 국민의 대변자로서 국회의원과 지자체장과는 분명 역할에 차이가 있다.

하여 모든 국민을 살펴서 한데 묶어 이끌려면 인생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 최저치로서 우리 헌법은 40년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경험이 저절로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경험의 질’과 ‘그 세월 동안의 학습’이 중요하다.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성취한 바가 있었고, 40세에 망설이지 않게 되었고, 50세에 천명을 알았으며, 60세에 귀가 뚫렸고, 70세에는 욕망을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논어/위정4-

우리가 잘 아는 지학(志學)-이립(而立)-불혹(不惑)-지천명(知天命)-이순(耳順)-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이다. 공자의 성장 과정, 곧 발전단계설이다.

공자 본인도 밝혔듯이, 그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生而知之)이 아니다. 학문에 뜻을 둔 평범한 사람으로서, 부단히 학습하고 경험하며 깨달아 나이 일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격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 점에서 인류의 스승으로 존경할 만하다. 나면서부터 아는 성인이라면 우리는 그를 배울 수도, 닮을 수도 없다.

따라서 분명히 하자. 나이가 40세가 되었다고 저절로 ‘불혹’이 되지 않는다. 부단히 노력하여 불혹에 이르고, 그 위에 또 부단히 노력하여 ‘지천명’에 이르고, 그 바탕에서 또 부단히 노력하여 ‘이순’에 이르고, 결국 ‘종심소욕불유구’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의 외교안보보좌관인 김현종은 ‘위대한 대한민국’의 조건 5가지 들었다.

첫째, 독자적인 외교를 할 수 있는 국가

둘째, 독자적인 국방을 할 수 있는 국가

셋째, 기업하기 좋은 나라

넷째,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나라

다섯째, 쓰러져도 사회안전망이 있어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라

다 잘 알다시피 이재명은 ‘개천에서 난 용’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개천에서 난 용들은 개천을 잊고, 용들의 리그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재명에게 주목할 점은 개천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천에서 굳이 용으로 비상하지 않더라도, 신분 상승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징거미나 피라미, 버들치, 다슬기, 미꾸라지, 메기 등의 그만그만한 사람들아 한데 어울려 살아도, 행복과 미래를 얘기할 수 있는 개천을 꿈꾼다. 대동세상(大同世上)이다.

그의 기본철학은 ‘억강부약’(抑强扶弱), 강자를 억누르고 약자를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회적 강자’라 하면 상위 1%, 혹은 10%를 연상한다. 아니다. 사회적 강자이건 사회적 약자이건 간에, 사람은 누구나 누구에게는 강자이고 또 누구에게는 약자이다. 어떤 강자도 누구에겐 을이 될 수 있고, 어떤 약자도 누구에겐 갑이 될 수 있다. 하여 ‘억강부약’은 깊이를 더하면, 철학적 주제가 될 수 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라고들 흔히 말한다. 그렇지 않다. 단 한 번의 실패로 끝장나는 세상이라면, 너무 허무하고 삭막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인생은 여러 번이다. 쓰러져도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실패가 끝이 아니라, 성공의 밑돌로 작용할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한다.

해외 탐사저널리즘 교본에 ‘부러진 다리 신드롬’(Broken Leg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다리가 부러져보기 전까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절고 다니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는 말이다.

올챙이 때를 잊지 않고 자신이 자란 개천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 ‘억강부약’의 철학으로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대동세상’을 위해 부단히 학습하고 경험하고 실천하여 온 사람.

역사의 전환점에 선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을 살펴서 한데 묶어 이끄는 지도자’로서 걸맞지 않을까?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