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꿈꾸는 도연명' 6 - 귀거래의 도연명은 행복했는가?
이득수
승인
2021.08.31 20:18 | 최종 수정 2021.09.0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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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는 전원으로 돌아온 도연명의 삶이 매우 가난했다는 결론을 맺었습니다. 그럼 단지 가난을 빼면 무지개 아롱지는 창공을 훨훨 날아가는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과연 느긋하고 만족한 생활을 영위했을 까요?
귀향 이후 그의 삶을 잘 보여주는 글인 <책자(責子)>, 그러니까 아들을 꾸짖는다는 오언절구(五言絶句)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편의상 원문을 약(略)하고 바로 번역하면
양쪽 귀밑머리 백발로 변하고
살결도 전처럼 윤기 없는데
아들이 다섯이나 있건만
하나같이 공부하기를 싫어하구나
장남 서는 열여섯이 되었지만
게으르기가 짝이 없고
선이란 놈은 곧 열다섯이 되는데
공부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옹과 단은 똑 같이 열세 살인데
여섯과 일곱조차 구별 못하고
통이란 놈 아홉 살이 다 되었는데
찾는 건 오직 배와 밤뿐이다.
내 자식 복이 이 모양이니
나 또한 술이나 마실 수밖에...
가정 분위기와 희망, 그러니까 자식 복이 이 모양이라 더 이상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천의무봉의 낭만시인이라 하여 그 자식 역시 총명하고 멋진 아들이 태어나란 법은 아니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한 것입니다.
여북 답답하면 자신의 유일한 벗이자 탈출구인 술도 자신이 스스로 담거나 사와서 마실 처지가 아니고 누군가가 어쩌다가 구해 주는 준중물(樽中物), 그러니까 나무술잔에 담긴 물건으로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섧다, 섧다 해도 배고픈 설움만 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하물며 시인에게 술이 없다는 설움만 한 것이 어디 또 있겠습니다. 술이 없어 못 마시던 전대시인 도연명을 불쌍하게 생각해야 되는지 이제 술 마실 형편은 되지만 술병이 나서 마실 수 없는 이 후배 시인이 더 불쌍한 것인지...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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