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꿈꾸는 도연명' 1 - 국화꽃 꺾어들고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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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6 16:31 | 최종 수정 2021.09.0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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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三伏)을 지나면서 폭염도 문제지만 되도록 자외선을 피하라는 담당의사의 당부로 낮에 산책을 못 하고 집안과 밤길에서 포토에세이 글감을 찾으니 늘 자재난(?)에 허덕입니다.
그래서 당분간 아주 오래 제 맘속에 자리잡은 시인과 선비로서 선망하던 롤 모델인 중국의 자연시인 도연명에 대한 이야기를 '꿈꾸는 도연명'이란 타이틀로 연재키로 하겠습니다. 조금은 생경하더라도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한여름의 신선놀음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다 늙어 고향에 돌아와 집을 지었다. 도연명(陶淵明)은 아니지만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밭을 갈고 꽃을 심고 울타리에 호박넝쿨을 올렸다.
그러나 '동쪽 울타리에 국화꽃을 꺾어들고 남산을 한 번 쳐다보기도(彩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전에 병이 들어 숲에 앉았다. 아직 제대로 된 시 한편을 못 써본, 단 한 번도 시의 오르가즘(絶頂)에 이르지 못한 이 늙은이도 이 세상 모든 시인들의 숙명인 가난하고 고단하고 허무하게 살고가야 함에는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문학청년이던 시절부터 일흔이 가깝도록 내게 가장 살갑게 다가온 문학작품의 제목이 '생의 한가운데', '강 건너 숲속으로', '숲에는 그대 향기' 등인데 이제 늙고 병들어 숲에 앉으니 그중에서 '숲에는 그대 향기'가 가장 절실히 다가온다. 그러면서 그 옛날 벼슬도 명예도 다 버리고 전원에 돌아왔지만 좋아하는 술마저 넉넉히 마실 수 없이 늘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며 지나간 젊음과 화려한 벼슬자리를 애써 잊고 고요히 생을 마감했던 도연명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이렇게 저 푸른 숲을 바라보았을지 궁금해진다.
늙고 병든 내가 얼마나 더 오래 이 숲속에 머물 수 있을지, 언제쯤 그 먼 길을 떠나 이 숲속의 음울한 그늘과 아득한 기억속의 눈빛으로 남게 될지 모르지만 나 아직 살아있으니, 이 고요한 숲 속에 내 가녀린 숨결을 펼쳐볼 수 있으니, 그리고 그 고요한 시인 도연명을 생각할 수 있으니...
남북조시대를 살다간 도잠(호 연명 366-425)은 당시(唐詩)의 양대산맥 이백, 두보보다 300년 앞선 한시(漢詩)의 개척자로서 그로부터 낭만적인 당시의 뿌리가 싹텄다고 할 정도로 귀거래사(歸去來辭), 책자(責子), 산중문답(山中問答), 도화원기(桃花源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등 청아하고 울림이 좋은 시와 수필을 남겨 중국문학사의 초석 또는 기재(奇才)에 속하며 한평생 국화와 술을 즐겨 벼슬이나 명예를 초개같이 여긴 진정한 시인이자 로맨티스트로 알려졌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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