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11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오동잎에 빗소리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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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6 13:02 | 최종 수정 2021.07.2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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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권문세가에서는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련 뜻(벼슬이나 출세)' 이라는 옛 노래처럼 노골적으로 벼슬욕심을 드러내고 딸을 낳으면 문전(門前) 오동나무를 심어 그 나무를 베어 장롱을 만들어 시집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 예쁜 딸을 보러 오는 수많은 총각들이 오동나무에 목을 매게 한다는 허세를 부리기도 하면서.
또 시골에서 밥술이나 뜨는 향반이나 대농(大農)과 시골선비도 오동나무를 심어 그 나무를 베어 거문고를 만들어 풍류를 즐기고 죽어 오동나무 관(棺)에 들어가는 것을 큰 호사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한시 (漢詩)나 고문에 보면 서책과 시문(詩文)을 가까이 하는 진정한 선비들은 이와 좀 동 떨어진 용도가 있는데 그건 비가 오는 날 널따란 오동잎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와 방울져 굴러가는 모습을 즐기는 것이었답니다.
우리 집 장독간 옆에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에서 작은 오동나무가 싹터 5년째가 되면서 이제 키가 전깃줄보다 높고 잎이 무성해 아침에 서재에서 작업을 하다 가끔 쉬면서 새소리를 듣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오동나무는 벽오동과 그냥 오동나무가 있는데 벽(碧)오동은 몸통이 초록색을 띠어 그렇게 부르는 모양입니다.
우리 집 오동나무는 그냥 평범한 오동나문데 벽오동의 가지가 45도 정도로 곧게 뻗는데 비해 오동나무는 가지가 약간 구부러져 옆으로 향하는데 낙엽이 진 겨울에는 마치 오래된 성당의 촛대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대칭형으로 뻗은 가지들이 한 폭이 판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기도 합니다.
국화와 술을 좋아한 귀거래사의 도연명(陶淵明)이 울타리에 버드나무가 다섯 그루 있어 호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지었는데 저도 오동나무하나가 있으니 '일오(一梧)선생'으로 지어보려다 오동나무는 멋지지만 시(詩)가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 그만 두었습니다.
이슬비도 아니고 소낙비도 아닌 딱 듣기 좋은 가랑비가 내리는 날 모처럼 오동잎에 비오는 소리를 녹음해보았습니다. 제가 아직 명상이나 선(禪)을 운운할 경지는 아니지만 하여튼 잡념이 없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현대적 독자를 위해 중학교 때 배운 주요한의 시 <빗소리>의 첫 연을 올립니다.
빗소리
비가 옵니다.
밤은 조용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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