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12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넌 누구니?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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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5 12:22 | 최종 수정 2021.07.2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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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데크로 나오니 마초의 밥통 옆에 제법 큰 쇠똥구리 한 마리가 나동그라진 걸 보고 얼른 뒤집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넌 도대체 누구니? 그리고 왜 여기에 왔니?”
마초의 아침식사를 챙긴다는 것을 가마득히 잊고 찬찬히 관찰하니 우리가 어릴 때 소를 먹이다 쇠똥무더기 밑에서 발견하던 쇠똥구리와 닮았기는 하나 등짝에 검정 비로도 프록코트를 입은 것 같은 우아한 쇠똥구리와 달리 색갈이 연한 갈색을 띈 것으로 보아 밤나무나 참나무붙이에 서식하는 풍뎅이나 사슴벌레 같은 다른 딱정벌레로 보였습니다.
머리 앞에 자동차의 범퍼 앞에 다는 충돌방지턱처럼 짧고 납작한 방패를 단 것이 암컷인 것 같았습니다. 만약 수컷이라면 낚싯바늘처럼 날카롭게 휘어진 뿔로 중무장을 했을 테니 말입니다.
다음 여기에 왜 왔을까가 문제인데 여름철에서 초가을까지 이와 비슷한 사슴벌레, 풍뎅이 등이 많이 날아오는데 주로 휘황한 전깃불을 보고 찾아오는 것 같고 대부분이 창문에 부딪혀 착륙에 실패해 저렇게 뒤집힌 채로 버둥거리는 모양이었습니다. 유독 마초의 밥그릇 옆에 많이 꾀이는 것은 아무래도 섬유질이 많은 개 사료의 냄새에 끌린 것도 같고...
소먹일 때 손가락에 쇠똥을 묻혀가며 땅을 후벼 수컷만 잡아 뿔싸움을 시키는 쇠똥벌레, 또 반딧불이 개똥벌레, 그리고 불나비처럼 불빛만 보면 뛰어들어 자폭하는 풍뎅이, 물에 사는 아주 작은 송장벌레, 사슴벌레, 장수하늘소처럼 어릴 때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많은 딱정벌레들이 많았습니다. 그게 그리 귀하고 신비한지 몰랐는데 성인이 되어 도시에 살다보니 천연기념물 장수하늘소 같은 것은 함부로 잡아서 안 되지만 수집가들에게 수백만 원 이상으로 팔린다고 들었습니다. 그 만큼 귀한 친구들 옆에서 우리가 자란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지요.
딱정벌레종류를 보면 언제나 어릴 때 소 먹이며 잡던 쇠똥구리를 떠올리던 제가 나이 들어 음악을 좀 들으며 이젠 주로 바이올린을 연상한답니다. 수많은 현악기 중에서 가장 단단하고 깜찍하며 날렵한 악기, 그래서 옛날의 정경화나 좀 젊은 강동석이나 김현미 같은 바이올리스트가 연주하는 매끄러운 음악 한 곡이 흘러나올 것도 같고...
아무튼 산골생활은 수많은 친구들과 얘기꺼리가 있어서 과히 심심하지 않아 좋은 것 같습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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