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09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숨은 꽃2

이득수 승인 2021.07.18 21:12 | 최종 수정 2021.07.23 22:02 의견 0
이름을 몰라 일단 '숨은 꽃'이라고 부르며 감상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요.

전에 '범의 귀'란 호젓이 숨어 피는 하얀 꽃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우리 화단에 조용히 피어난 가냘픈 미인들을 소개합니다.

좀 넓은 화단을 가꿔보면 이른 봄의 생강꽃, 진달래, 죽장화를 비롯하여 5월의 장미와 모란 6월의 백합과 산나리꽃, 7월의 접시꽃, 8월의 해바라기, 가을철의 국화 등 단연 뛰어난 자태로 한동안 화단을 주도하는 화려한 꽃들이 있고 반면 채송화처럼 조용히 엎드려 소리 없이 피다 지는 꽃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꽃이 바로 그렇습니다.

첫 번째는 키도, 꽃송이도 작은 꽃은 난초나 창포종류 같기는 한데 아무튼 자세히 보면 여간 앙증맞고 귀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름을 몰라 아내가 화원에 가서 알아오겠다는 걸 제가 말렸습니다. 괜히 숨어 피는 작은 꽃의 매력이 떨어질까 싶어서 말입니다.

두 번째 하얀 바탕에 신비한 주황과 보라를 섞어놓은 신비한 색깔의 저 꽃은 전에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에 나오는 소년의 모자 빛 같다고 제가 소개해 누군가 이름을 알려주었는데 그만 또 잊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알아내기보다는 그냥 지내기로 했습니다.

좀 남성적 시각의 이야기라 다소 질타를 받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미인이란 게 탤런트를 예로 들어 황신혜처럼 이목구비가 또렷하게 <돋을새김陽刻>된 전형적미인도 있고 김혜수처럼 얼굴이 둥글고 몸매가 풍성한 육감적미인도 있습니다. 그리고 옛날 <옥탑방고양이>에 출연한 여주인공 정다빈이나 눈웃음이 고운 소유진처럼 가냘픈 몸매에 가름한 얼굴과 마치 토인들의 목각인형처럼 가늘고 긴 눈매와 콧날로 가까스로 조화를 이룬 어딘가 아쉬우면서도 마침내 안타까울 정도의 애틋한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섬약(纖弱)한 <오목새김陰刻>의 미인도 있어 애틋하게 사람을 울리는 매력은 한층 더 한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저 꽃들처럼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여인이 나름대로 향기와 개성을 가지듯 꽃도 그러할 것입니다. 한 동안 저 조그만 꽃들을 보며 삼복더위를 넘길 것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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