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01 나뭇잎이 푸르른 날에 - 옥수수(1) 구원(救援)의 식물

이득수 승인 2021.07.12 16:07 | 최종 수정 2021.07.16 13:19 의견 0
수확한 옥수수

우리집의 첫물 옥수수를 한 서른 개 수확해서 여남은 개만 남기고 딸네집에 보냈습니다. 한 일주일쯤 지나 이번에는 한 40개를 몽땅 택배로 서울 아들에게도 보내고 난 우리 부부는 정작 우체국 옆 분식집에서 잔치국수를 먹고 왔습니다.

언제 먹어도 달달하고 고소한 옥수수, 노란 옥수수도 맛있지만 자주색 알갱이가 박힌 옥수수를 먹을 땐 마치 보석을 한 움큼 먹는 기분이 들지요. 곡식 중 가장 열매가 큰 이 옥수수는 아무데서나 잘 자라 늘 배고픈 인류에게 조물주의 최대의 선물이자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파고들어 울고 웃는 사연을 만들고 역사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한 댓새 옥수수에 대한 시리즈가 나갑니다.

제가 옥수수를 구원(救援)의 식물이라고 부른 이유는 기근과 흉년에 시달리던 우리 인간의 식량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해준 구세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역사기록이나 문학작품에서 수많은 사람이 아사(餓死)를 목격하고 남의 일처럼 무심하지만 사실 지금도 아프리카에는 수많은 어린이가 젖도 떼지 못하고 어미와 함께 굶어죽듯 역사를 통틀어 식량부족은 가장 큰 인류의 고민거리입니다.

그런데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짓던 옛날 사람들이 흉년을 견디는 길이 요즘처럼 식량증산이나 축산 같은 대체식품을 구하거나 외국의 원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우선 양식을 소비하는 입을 줄이는 길, 그러니까 늙은 부모를 버리는 한국의 고려장이나 뉴기니나 아프리카에서 이루어진 영아(嬰兒)를 살해하는 방법밖에 없었답니다. 그나마 기독교를 믿는 유럽에서는 돈을 걷는 자선냄비와 성당에서 버리는 아이를 맡아주는 아기냄비를 생각했을 정도고요.

직접 키워 수확한 옥수수

여러분은 호모사피엔스라고 불리는 우리 인간이란 종(種)을 어떤 동물이라고 생각하나요? 직립보행, 생각하는 동물, 도구를 쓰는 동물, 놀이를 즐기는 동물 등 여러 가지로 좋게 생각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저 굶어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겁쟁이일 뿐입니다. 처음 나무위에서 살던 조그맣고 호기심 많은 영장류 한 무리가 슬금슬금 땅으로 내려와 칡덩굴이나 갈대숲에 숨어 그 뿌리를 캐고 각종 과일이나 도토리를 주워 먹다 강아지풀이나 피(稗, 패로 읽음)같은 작지만 고농도의 녹말이 든 열매를 채취하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며 점점 체격이 커지면서 조, 수수, 귀리, 기장같이 점점 큰 곡식을 재배하며 부족국가 같은 정치권력이 생기고 보리, 밀, 쌀이 개발되면서 가부장제와 왕정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맬서스의 식량은 산술학적으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인구론>처럼 끝없이 늘어나는 인구로 조금만 날씨가 나쁘면 엄청난 기근이 닥쳐 인류는 수없는 약탈과 침략을 일삼으며 살아오다 뿌리채소의 열매인 감자와 고구마가 보급되면서 한결 흉년을 넘기기가 쉬워졌는데 마지막으로 신대륙의 옥수수가 구대륙으로 들어오면서 고질적인 식량난이 대폭 개선되어 비로소 근대문명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쌀, 보리, 콩, 조, 기장을 5곡이라 하고, 날씨 때문에 그 중 몇 가지를 먹을 수 있고 없고에 따라 기(飢), 근(饉), 흉(凶)등으로 구분했고 서양에서는 일정한 면적에서 얼마나 곡식이 생산되어 몇 명의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가로 인구부양율이라는 기준을 만들었는데 1위의 곡식이 바로 옥수수입니다. 그래서 서양의 주식인 밀과 동양의 주식인 쌀과 더불어 세계3대 식량작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심심풀이로 먹는 강냉이박상이나 옥수수칩처럼 결코 심심풀이의 식품이 아니라 바로 인류의 생명줄인 것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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