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94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산골, 비오는 아침

이득수 승인 2021.07.06 13:12 | 최종 수정 2021.07.11 09:01 의견 0
장마 속에 잠시 비가 그치자 초록이 더욱 짙어졌다.

며칠째 내리던 장맛비가 아주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 부지런한 아내는 밤새 무슨 일이 없는지 고추밭, 참깨밭과 화단을 한 바퀴 돌고 마초도 공연히 우줄거리며 따라다닙니다.

당신은 비를 맞으면 안 된다고 말리는 바람에 데크에 멍하니 서있는 나에게 오늘은 길 건너 나지막한 산이 가벼운 안개를 품은 채 슬며시 다가와 엎드리고 울타리 뒤의 소나무들이 모처럼 뭐라고 수런거리며 말을 걸어옵니다.

기타를 좋아하는 낭만농부와의 전쟁에 이긴 길 건너 풀밭이 시위하듯 한층 더 푸르고 싱싱해 제 마음에 푸릇푸릇 새움이 돋는 것 같습니다.

비오는 산골의 아침은 포근하고 행복한 아침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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