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90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뱀, 진짜 악마인가?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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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6 14:15 | 최종 수정 2021.07.0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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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한 지 얼마 안 되는 시멘트 농로에 꽃뱀(화사, 혹은 너블대) 한 마리가 햇볕을 쬐다 나를 보곤 잽싸게 풀숲으로 도망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지구가족들 중에 뱀만큼 인간에게 심한 미움을 받는 동물은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독니로 사람을 물어서 그럴까요? 성경에서 이브를 유혹해 선악과를 먹게 한 사탄이라서 그럴까요? 아니면 너무 징그럽게 생겨서 그럴까요?
그러나 알고 보면 뱀은 인간의 편견과 달리 매우 여리고 아름다운 동물입니다. 팔다리가 없어 비늘을 세워 간신히 기는데 똑바로 길수가 없이 자세히 보면 게처럼 타원형의 물무늬를 이루며 기어가야만 합니다. 먹이를 잡는 것은 물론 천적과 싸워 남아야 하니 자연적으로 유일한 무기인 독아(毒牙)를 장착할 수밖에요.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뱀은 쥐나 개구리나 둥지속의 알들을 제외한 지상의 거의 모든 동물들과 싸움에서 한주먹감도 되지 않는 약자입니다. 조물주가 뱀을 만들 때 죄 없는 동물들이 희생되지 않게 멧돼지, 너구리, 담비, 오소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야생동물의 주둥이에 혈관에 신경을 없애 뱀이 아무리 물어도 독이 주입되지 않고 곰이나 너구리가 뱀을 마치 국수라도 삼키듯이 씹어 먹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또 새들만 해도 독수리나 부엉이 같은 맹금류는 물론 황새나 산닭, 꿩 정도의 크기면 아예 핏줄이 없는 긴 갈고리(다리)끝의 발톱으로 단번에 뱀의 몸통을 찢어놓게 만들어 족제비처럼 아예 뱀을 주식으로 하는 동물도 있습니다.
거기다 냉혈동물인 뱀은 아침저녁으로 볕을 쬐지 않으면 몸이 얼어 움직이기 힘든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 뱀도 아른 아침에 논으로 가는 농부의 농기계나 화물차에 희생이 된 것이겠지요.
한번은 천성산에 등산을 갔다가 키보다 높은 암벽을 오르느라 바위 위에 손을 걸고 간신히 올라가니 아뿔사! 커다란 살모사 한 마리가 바로 제 손 옆에 똬리를 털고 있었는데 놀란 저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숲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너무 일찍 나타난 등산객 때문에 몸을 녹이던 녀석이 얼마나 놀랬을까요? 이처럼 뱀은 자기를 공격하지 않는 사람을 절대로 물지 않습니다. 개구리나 뱀도 꼭 먹을 만큼만 잡는 아주 모범적 지구가족인 것입니다.
항간(巷間)에서 말하는 <꽃뱀>이라는 비속어를 진짜 꽃뱀(花蛇)이 들으면 얼마나 불쾌하겠습니까? 가장 여리고 아름다운 지구가족 뱀에게도 한번쯤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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