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97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꽃잎이 진다는 것은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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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8 13:22 | 최종 수정 2021.07.1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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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 아침에 화단과 뜰에 수많은 꽃잎들이 눈물처럼 떨어져 서러움이 가득한 수채화를 펼칩니다.
한 송이의 꽃이 피고 한동안 그걸 바라보며 기뻐하고 웃는 것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서럽고 안타깝게 꽃이 지는 날을 담보로 하는 조건부 기쁨입니다.
사람 중에는 피어나는 꽃에 열광하고 떨어지는 꽃잎에 무심한 사람도 있고 피어나는 꽃을 보고 조용히 미소짓다 눈물처럼 날리는 꽃잎을 보고 슬퍼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전자는 젊고 건강한 사람, 후자는 늙고 병들어 외로운 사람들일 겁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예외, 저 참깨 꽃처럼 튼실한 열매를 맺어 자신의 소임을 다 한 꽃잎은 낙화마저 당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자식을 여럿 낳은 우리네 할머니가 임종의 병상에서 메마른 얼굴에 합죽한 웃음을 띠며 편안하게 자손들을 둘러보는 것처럼.
제 나이 정도, 제 건강 정도면 이제 떠날 때가 다 된 꽃잎과 다름이 없을 텐데 제가 여전히 낙화를 사진 찍으며 상념에 빠지는 걸 보면 사람이란 참으로 끈질긴 미련쟁이 같습니다. 그래도 삶이란 9회 말의 야구처럼 끝날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 법, 무심한 척 또 한 번의 연장전을 꿈꾸어 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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