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04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옥수수4, 옥수숫대 에피소드

이득수 승인 2021.07.16 20:37 | 최종 수정 2021.07.20 09:31 의견 0
연한 옥수수대는 씹으면 단맛이 난다

옥수수는 비슷한 이름의 사탕수수처럼 그 파란 줄기는 물론 하얀 속살에서 단 맛이 납니다. 그래서 설탕이 귀해 재벌이 사카린을 밀수하고 아낙네들이 '신아당'을 사다 밀떡을 찌던 시절 시골아이들엔 더없이 좋은 군것질감이 되어 여름철 내내 입에 달고 살았지요.

그런데 마을에 택호(宅號)가 다동어른인 친구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처가가 다개마을이라 그런 택호를 받았는데 아이들이나 부인들이 부를 땐 점잖은 '다동어른'인데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 부를 댄 '다동이'가 되고 그게 구개음화현상으로 '다댕이', '다대이'로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지런한 농부는 성격도 맺고 끊기가 불같아서 소 먹이러 가는 아이들이 한눈을 팔아 자칫 길가에 있는 자기 벼를 뜯어먹기라도 하면 다른 농부들은 자기도 소를 먹이는 아이가 있는지라 그냥 넘어가는데 이 양반은 기어이 방목(放牧)을 매긴다고 즉, 피해를 물린다고 아우성이라 아이들에겐 아주 무서운 아저씨였지요.

그런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옥수수줄기를 질겅질겅 씹던 사내아이 몇이

“다나?”

“다대이.”

하나 문득 비죽이 웃으며 그 다동어른 삽짝 앞에 찾아가서

“다나?”

“억수로 다대이!”

“진짜 다나?”

“다대이!”

“어데가 다노?”

“꼴갱이가 다대이!”

“마디는?”

“억수로 더 다대이?”

번연히 자기를 놀리는 줄 알면서도 이상하게 그 다동어른은 마루에서 빙긋이 웃고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한층 신이 난 아이들이 다나, 다대이를 반복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요놈의 종내기들이!”

마침내 화가 난 친구엄마가 담 너머로 찬물세례를 퍼부었습니다.

그 어른들이 돌아가신 지가 벌써 30년이 되고 그 마을엔 이제 40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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