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원본인가요
이 광
똑같아 보이지만 결은 이미 다른 걸요
단 한 점 구김 없이 손 벨 듯 날 선 표정
애초의 붉은 인장은
뜨거웠죠
순수했죠
인터넷에선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별다른 규제 없이 과장광고가 범람한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믿음을 쌓아가기보다 불신과 배척의 요령을 터득한다. 진짜는 귀하고 가짜가 흔한 세상, 정말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복사기에서 출력한 사본은 원본보다 깔끔하다. 날이 선 종이에 손이 살짝 베이기도 하듯 날카로운 면도 가진다. 요즘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 원본은 쉽게 꺼내지 않는다. 실상을 감추거나 더 유리한 면모를 보이기 위해 수정된 사본을 내미는데 숙달되어 있다.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디딜 때 입사 서류를 준비하느라 인감을 등록한 날이 있었다. 열정과 순수로 가득하던 시절 도장에 힘을 주고 꾹 눌러 찍으며 초심을 새겼으리라. 그 후 인감증명을 뗄 때마다 초심에서 조금씩 멀어져가는 자신을 보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은 물같이 흘러 지금의 나는 얼마나 바래졌을까.
당신, 원본인가요? 상대방에게 묻는 투로 말하지만 실은 나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너 지금 얼마나 원본에서 멀어져 살고 있느냐 하고.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