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99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마초, 장맛비에 횡재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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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2 15:44 | 최종 수정 2021.07.1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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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장맛비가 시작되는 바람에 평소 달빛과 바람이 시원한 데크 위나 참깨 밭에서 잠들던 마초가 하는 수 없이 어둡고 갑갑한 개집에서 자느라고 밤새 많이 외로웠나 봅니다.
아침에 제가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번개처럼 들어와 현관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아무리 나가라고 해도 무대뽀로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마초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털이 날리고 냄새가 풍기는 바람에 자주 얼굴을 찌푸리는 아내가 입에 간식을 물리며 밖으로 유도해도 꿈쩍도 않는 것이 어떻게든 불빛이 있고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에 있고 싶은 모양인 것 같았습니다.
점심모임이 있어 부산으로 떠나는 아내가 어떻게든 마초를 밖으로 내몰려 했지만 마초의 눈빛이 너무 불쌍해 보였습니다. 한참이나 곰곰 생각하던 아내가 오래 쓰지 않는 이불을 하나 꺼내 현관 바닥에 깔아주고 떠나자 비 때문에 횡재를 한 마초가 비로소 편안하게 누웠습니다.
세상에 장미꽃 무늬의 이불을 깔고 낮잠을 자는 개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우리 마초가 명촌리는 물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개가 되는데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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