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06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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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7 11:37 | 최종 수정 2021.07.2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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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거나 경우 없는 소리를 할 때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사진을 저의 애견 마초가 길가의 풀잎을 뜯어먹다 성이 차지 않는지 길가 논의 볏잎까지 뜯어먹는 모습입니다.
늑댓과의 개나 사자, 호랑이 같은 육식성의 짐승은 절대로 풀잎 따위는 먹지 않고 오로지 고기만 먹는다고 생각하는 건 그냥 인간의 고정관념인 것 같아요. '동물의 세계'를 보면 우리 마초처럼 콧등을 찡그리고 풀잎을 먹는 수사자도 흔히 보이니까요.
문제는 왜 먹을까 인데 그게 배가 고파서는 아닐 것 같고 그간 제 짐작은 뱃속에 있는 회충이나 벌레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닐까 했는데 꼬박꼬박 회충약을 먹인 마초가 여전히 풀잎을 먹는 것을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아마 사람이 채소나 과일을 먹듯이 비타민이나 무기질 같은 특정 미량(微量)요소의 섭취를 위함이 아닐지 짐작할 뿐입니다.
좀 외진 산기슭이나 물가에선 나비나 잠자리 떼가 특정지역의 흙이나 바위부스러기에 앉아 뭔가 열심히 빨아먹는 것을 보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그와 비슷한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모든 지구가족은 늘 무언가 필요한 걸 이 지구에서 얻어야 하니까요.
이제 '개 풀 뜯어먹는 소리' 같은 말은 자동으로 퇴출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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