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13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검정 폭격기 제비나비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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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6 18:40 | 최종 수정 2021.08.0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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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에 보라 빛 할미꽃과 봄맞이꽃, 노란양지꽃이 피면 우리 집 화단을 찾아오는 나비와 벌도 자연 늘어납니다.
자세히 관찰하면 매화와 복사꽃, 살구꽃과 유채, 쑥갓과 무장다리, 나리꽃과 배롱나무 같은 각각의 꽃에 찾아오는 나비와 벌, 침이 없는 짝퉁 벌 나나니와 밤에만 찾아와 주로 꽃가루를 빠는 나방까지 꽃과 곤충과 서로의 단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연인을 <꽃과 나비>라고 하는 말이 단순히 화단에 보이는 꽃과 나비가 아니라 꼭 특정 꽃이 필 때 나타나 그 꽃의 꿀을 빨고 그 발치에 알을 숨겨 번식을 하는 나비, 그 필연적이고도 환상적인 커플을 바로 <꽃과 나비>라는 걸 이제 깨달았으니 이게 머리가 둔한 건지 그 나마 늦게 머리가 틘 대기만성(大器晩成)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초여름에 피는 꽃 중에서 나리꽃이 가장 키도 크고 꽃도 아름답다고 여러 번 소개했는데 알고 보니 그 단짝인 제비나비도 위용이 대단합니다.
나리꽃이 필 때쯤 우리 화단에 나타나는 이 검정 프록코트를 단정하게 입은 거대한 나비는 폭이 5센티도 넘을 것 같은 검정 코트 밑에 중세부인처럼 엄청 폭이 넓은 검정치마를 덧대 입어 자세히 보면 국군의 날에 시험비행하는 거대한 전투기를 닮은 것 같은데 저는 그 때마다 어쩐지 항공모함 같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합니다.
어쩌면 제비가 날아가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엔간한 어린아이의 주먹보다 큰 이 거대한 나비는 생긴 것과 달리 예민합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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