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14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에레나가 된 순이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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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7 14:59 | 최종 수정 2021.07.2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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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 되자 화단의 나리꽃이 일제히 피었습니다. 늘씬한 몸매와 황금빛 꽃잎에 찍힌 몇 개의 갈색 점, 언제 보아도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리꽃은 아주 종류가 많은데, 하늘말나리꽃이 산뜻하고 청순한 시골처녀 같은데 꽃송이도 흐벅진 산나리꽃(참나리꽃)은 어쩐지 짙게 화장해 눈부시게 고혹적인 도시의 귀부인이나 여배우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애초에 소박한 산나리꽃을 누군가가 집에 캐다 심었고 다시 육종업자가 개량을 해 저렇게 화려하게 변한 모양인데 그게 정녕 잘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문득 <에레나가 된 순이>라는 안다성의 노래가 생각나며 하늘말나리꽃이 순이, 참나리꽃이 에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카바레에서
보았다는 그 소문이 들리는 순이
석유 불 등잔 밑에 밤을 새면서
실패 감던 순이가 다홍치마 순이가
이름조차 에레나로 달라진 순이, 순이
오늘 밤도 파티에서 춤을 추더라.
이미 반세기나 된 노래라 적절한 비유인지는 몰라도 지금도 황금의 불야성인 도시의 불빛을 찾아 고향을 버리고 서울(수도권)으로 몰리며 타고난 순수성을 점점 잊어가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아 꼭 남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굳이 더 예를 들자면 김정애의 <앵두나무처녀>의 가사
앵두 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밋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굴 찾아서
입분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2절 생략-
서울이란 요술쟁이
찾아갈 곳 못 되드라
새빨간 그 입술에
웃음 파는 에레나야
헛고생을 말고서
고향에 가자
달래주는 복돌이에
입분이는 울었네.
의 입분이와 금순이도 에레나가 되었음에는 차이가 없고 최무룡의 <원일의 노래>에 나오는, 내 고향 뒷동산 잔디밭에서 손가락을 걸면서 맹세한 <옥녀>도 분명히 에레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날씨도 더운데 다 늙은 사람이 뭐 그렇게 꽁창스럽게 대중가요 가사나 들먹이나 싶지만 뭐 또 그렇게 상념에 젖어 한나절쯤 보내기도 하는 거지요.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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