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22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갠달, 그 청아한 밤에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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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3 17:46 | 최종 수정 2021.08.0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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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갠달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밤비가 멎으면서 슬그머니 떠오른 달을 갠달이라고 하는데 먼지 한 점 없이 정갈하게 씻긴 하늘 위에 말갛게 세수한 달이 너무나 밝고 청량해 그 고요하고 청신(淸晨)한 상태를 옛날의 선비들이 제월(霽月)이란 한자어로 당시(唐詩)를 비롯한 한시에 늘 즐겨 사용했답니다.
그런데 명촌별서에서 1km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진짜 <갠달>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비스듬한 언덕바지에 오손도손 자리 잡은 마을인데 예로부터 유난히 달이 가까이 내려온 마을인지 마을명을 갠달이라고 쓴 사실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래서인지 갠달마을에 가까운 명촌별서에도 밤비가 그치면 참으로 맑고 고운 달, 이태백이 제 죽을 줄도 모르고 <물에서 건져낸 달>같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달이 뜹니다.
그런 밤에는 무엇보다도 들에서 우는 개구리, 풀섶의 풀무치, 숲속의 산새소리가 한층 또렷하고 가깝습니다. 어렴풋이 비치는 붉은 산나리꽃을 어루만지는 갠달의 밤소리를 잡아보았습니다. 개구리와 풀벌레와 산새, 한 7,8가지의 소리를 가려 들어보면 재미가 있을 겁니다.
유난히 폭염의 기세가 등등한 이 여름에 숨이 턱턱 막히는 아파트의 오후나 잠 못 이루는 열대야에 이 청량한 소리 한 번 들어보시고 꿀잠 드시기 바랍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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