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25 나뭇잎이 푸르른 날에 - 아름다운 열녀각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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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6 15:39 | 최종 수정 2021.08.0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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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울주군 상북면 향산리 능산마을 쪽에서 석남사 방향으로 진행하는 오른쪽 산등성이에 자리한 열녀(烈女)각입니다. 사당안의 비문을 보면 ‘신녕현감 문화류씨 해지의 처, 동래정씨 숙이 정려(旌閭)비’라고 세로로 두 줄로 쓰여 있습니다. 현감정도라면 고관대작도 아니고 비각 자체가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저는 상북면 또는 울주군에서 가장 아름다운 민속자료로 꼽고 싶습니다.
진분홍 배롱꽃이 피는 여름 한 철에 석남사 방향으로 지나가는 차장 밖으로 내다보면 열일곱 적 소년의 가슴을 처음으로 울렁이게 한 소녀의 뺨에 떠오르는 분홍빛이나 속눈썹처럼 섬뜩하도록 고운 배롱나무 꽃과 아담한 정자가 나타납니다.
여느 서낭당의 할배할매나무처럼 크고 작은 한 쌍의 배롱나무(저렇게 수백 년 된 배롱나무는 그리 흔하지도 않습니다)는 매끈한 등걸과 파란 잎사귀, 진분홍 꽃잎이 그렇게 선연히 고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작은 정각 건물과 주변의 조화가 가깝게는 풍경화의 정수(精髓), 멀리는 원근법의 교과서처럼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부부 사이의 금슬이라든지, 죽은 남편을 위한 절개라는 해묵은 도덕률을 떠나 하나의 작은 정각이 저렇게 아름답게 주변과 잘 녹아들 수 있는지 참으로 신통하다는 생각이 다 듭니다.
위치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 송대리 언양성당을 지나 상북면에 진입해 석남사 방향으로 2, 3분 달리면 자동차면허시험소 입구가 나타나는 삼거리 오른편 산기슭입니다. 혹시 석남사나 밀양, 청도 쪽으로 가시는 걸음이 있으면 유심히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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