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30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어쩌다 너만 혼자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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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6 15:48 | 최종 수정 2021.08.1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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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나무들 중에 가장 성장력이 왕성한 나무를 꼽으라면 버드나무와 벚나무도 아마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입니다. 그래서 새 길을 내면 가로수로 많이들 심어 어느 듯 대한민국의 국도나 아파트는 가히 벚나무의 천국이 되고 벚꽃축제가 하나쯤 없는 자치단체나 대형아파트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매일 산책을 나가는 상북면사무소와 등억온천 간의 도로에 참으로 애달픈 모습의 벚나무가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선병질(腺病質)의 아이처럼 어릴 때부터 약한 모습이었는지 소년 적에 교통사고나 소아마비를 앓은 아이처럼 모종가지(성장점이 있는 가운데 가지로 표준말로 우듬지라고 함)가 우지끈 부러지고 간신히 곁가지 하나만 곱사등처럼 휘어졌는데 그나마 몇 안 되는 가지의 절반쯤이 말라죽어 과연 저 형편에 지난봄에 벚꽃이나 피었을까 애처롭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아름다운 이 세상은 속으로는 참으로 무정하고 냉정해 저 안타까운 나무를 비웃기라도 하듯 현대문명의 상징인 반듯하게 포장된 도로의 주행선(走行線)과 싱싱한 나뭇가지보다도 더 높은 전선(電線)은 일직선으로 힘차게 달려가며 눈길 한 번 주지 않아 병약한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저 비루먹은 나뭇가지 뒤로 끝없이 푸른 들판과 아스라한 산봉우리와 고즈넉한 마을이 포근하게 펼쳐져 저 굽은 벚나무도 연두 빛 묘목(苗木) 때의 꿈을 펼치기에 넉넉한 하늘입니다. 내년 봄에는 저 여윈 나무의 수세도 좀 펴지고 팝콘이 터지듯 요란하게 벚꽃도 피워내고 선홍빛 버찌도 좀 매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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