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37 여름과 가을 사이 - 능소화는 별이 되고 싶다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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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3 10:18 | 최종 수정 2021.08.2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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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같은 덩굴식물 중에서도 매우 꽃이 고운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자줏빛 등나무꽃이고 다홍빛 칡꽃도 만만치가 않고 오이, 참외, 수박, 구기자, 오미자, 인동초 꽃도 예쁘고 <호박꽃도 꽃이냐>는 호박꽃도 자세히 보면 나름 한 미모를 합니다.
그러나 지상의 모든 덩굴식물 중에서 가장 예쁜 꽃을 찾으라면 단연 능소화를 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담장 가장 높은 곳을 점령한 산뜻하고 우아하고 고귀한 주황색의 꽃은 누구나 한 번 보면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마치 백합이 청순한 처녀를, 섬약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손가락을 찔러 죽게 한 장미가 요염한 꽃, 모란이 세례요한의 목을 베게 한 당돌한 살로메 같다면 저 능소화는 오랜 인고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자기아들을 보위에 올린 젊은 대비(大妃)처럼 당당하고 풍염하며 귀티가 흐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20년 전 박옥수라는 여류시인이 <능소화는 별이 되고 싶다>라는 시집의 해설을 의뢰했을 때 정말 별이 되고도 남을 고귀하고 황홀한 꽃이며 시라고 써준 일도 있습니다.
명촌의 새집에 화단을 가꾸면서 저는 물론 오랜 세월 아내이 로망인 능소화 두 포기를 엄청 비싸게 사서 대문 양쪽에 심었더니 그해 바로 줄기가 뻗고 화려한 꽃이 피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여름부터 이상하게 한 번씩 별안간 숨이 턱턱 막히며 땅속으로 몸이 꺼져가는 듯 무력감과 함께 속이 메스꺼워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 한 나절 쯤 몸져눕는 일이 자주 발생했고 이듬해 초에 큰 병을 얻어 대수술을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간 굴곡진 삶을 살며 스트레스도 많고 술도 많이 마셨지만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합격을 받은 사람이 갑자기 그럴 리가 없다고 곰곰 생각하다 문득 능소화가 체질이 맞지 않는 사람에게 엄청 위험한 독소를 뿜는다는 이야기를 떠올랐습니다.
당장 뿌리째 뽑아 이웃의 조카에게 주었는데 그 뽑아낸 자리에 봄에 다시 싹이 돋아 저도 모르게 뽑다 그날 또 쓰러졌습니다. 장갑을 끼고 해도 소용이 없고 냄새만 맡아도 정신이 혼미하고 온몸이 까라지고 비누칠을 해 씻어도 오래 갑니다.
근래에는 시골은 물론 도시의 담장에도 흔히 능소화가 발견됩니다. 그리고 부산의 도시고속도로 오륜터널 입구 조금 못 미쳐서처럼 도로가 언덕과 철책에 수백 평이나 능소화를 심은 곳도 있어 물론 예쁘기는 하지만 저처럼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의 포토에세이는 꽃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의도는 조금도 없이 모두들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자기 체질에 맞든 아니든 멀리서 바라보기는 하되 절대로 가까이 접근하거나 만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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