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31 나뭇잎이 푸르른 날에 - 황혼의 노부부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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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6 15:44 | 최종 수정 2021.08.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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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도 한참 뒤 사광리마을 만당(꼭대기)집의 부부가 밭에 나가 가지를 한가득 따 들고 논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남편은 70대 초반, 아내는 60대 후반의 재혼부부로서 각각 이미 출가한 남매와 손자들이 넷씩이나 있지만 그 많은 대가족이 그럭저럭 잘 지낸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의 검정 장화는 물론 남편의 밀짚모자와 아내의 몸뻬와 하얀 타월도 썩 잘 어울려 어스름의 들길에 포근히 녹아들고 있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네 명의 자식들을 위해 잘 생긴 가지는 따로 챙기고 그 중 못난 가지로 나물을 무쳐 어금니가 없는 영감님이 합죽한 입을 오물거리며 저녁을 먹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정경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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