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33 여름과 가을 사이 - 촌부(村夫)의 꿈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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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5 12:49 | 최종 수정 2021.08.1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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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딸네집에 하루 다니러 간 아내가 아침저녁으로 배추모종에 물을 주라고 떠난 뒤 어린아이 키우듯 꼭꼭 감싼 부직포를 벗기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방금 파랗게 생명의 촉수를 내민 배추 싹도 그렇지만 배추씨를 뿌린 검은 포트와 부직포를 덮기 위한 철사거치대까지 절묘한 구성이 기막히게 산뜻하고 절묘한 것이었습니다.
겨우 한 200포기의 배추를 가꿔 김장김치를 담는 사이사이 배추모종이나 김치를 자식은 물론 이웃에게 나누겠다는 소박하면서도 옹골찬 농촌아낙의 꿈이 영글어 아마 저렇게 멋진 풍경으로 익은 모양이었습니다.
물조리게를 찾아 물을 주고 사진까지 찍어 <촌부(村夫)의 꿈>이라는 꽤 그럴듯한 이름을 지었습니다.
저 모종이나 배추농사가 잘 되어야 아내의 가을이 흐뭇하고 덩달아 마초할배도 숨쉬기가 편안해질 것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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