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32 여름과 가을 사이 - 귀하신 몸 토종 꽃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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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3 10:10 | 최종 수정 2021.08.1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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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정원(庭園)과 정원(庭苑)이 어떻게 다른지 아시나요?
앞에 있는 정원의 원(園)자는 사방이 울타리로 막혔으니 뭔가 훔쳐갈(보호할) 것, 즉 과일나무가 있는 과수원을 뜻하고 뒤의 정원은 단순한 꽃밭을 뜻합니다. 그런데 웬만한 크기의 정원을 가꾸다 보면 석류, 모과, 치자 같은 과일나무도 심기 마련이라 순수한 정원(庭苑)은 보기 드문 셈이 됩니다.
명촌별서의 초목관리는 과일나무와 정원수는 마초할배가, 일년생 초화는 할매가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몇 년 흐르다 보니 아내는 여러 가지 풍성하고 아름다운 외래종 꽃을 좋아해 날마다 새로운 꽃들이 들어서 제가 심은 봉숭아, 맨드라미, 나팔꽃, 채송화 같은 토종꽃들이 입지가 좁아지기도 했지만 왕성한 성장력과 번식력에 뒤져 점점 코너에 몰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모과나 배롱나무, 박태기콩나무 같은 정원수들도 점점 자라 그늘을 이루어 초화들이 자랄 공간이 좁아지는 데다 아내는 수국이나 개량인동초처럼 점점 땅을 많이 차지하는 화초를 심고...
그러다 보니 제가 심은 봉숭아 등 토종꽃이 간신히 고개를 내밀면 슬그머니 뽑아버리기도 하고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년초를 덩굴로 휘감는 나팔꽃은 불구대천의 원수, 아니 요즘 젊은 사람들 말처럼 구타유발자라도 되는 것처럼 눈에 띠는 그 순간 바로 뜯어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인구의 대부분이 도시인이 되어버린 이 시대 젊은이 또는 여성들의 성향인지 비단 우리집뿐 아니라 가로나 아파트단지의 화단이나 공원에도 토종꽃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이른 봄부터 팬지꽃, 페추니아, 사루비아, 포인세티아등 온실에서 길러내어 꽃집에서 팔거나 관공서에 납품한 꽃들이 판을 칩니다. 심지어 코스모스마저도 꽃송이가 크고 단조로운 붉은 코스모스나 금계국으로 대체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릴 때 장독간과 우물 옆에 있었던 조그만 화단에 핀 소박한 토종꽃에 애련한 미련이 남은 저는 견디다 못해 오이, 가지와 토마토들 심던 비닐하우스 앞의 작은 밭을 내년에는 일년초 전용의 화단으로 만들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간 심지 못 했던 토종꽃 당국화(과꽃)와 분꽃도 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토종꽃 채송화와 봉숭아꽃을 올립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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