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23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나비야 청산(靑山)가자, 기(機)와 기(企)

이득수 승인 2021.08.04 19:13 | 최종 수정 2021.08.06 09:56 의견 0
공격 기미(機微)를 보고 있는 사마귀

산나리꽃에 날아온 호랑나비가 너무 고와 휴대폰 동영상을 찍으려는데 잠깐도 조용히 모델이 되어주지 않고 도망가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합니다. 

어제 온 비로 날개가 젖은 나비가 창문에 붙어 날개를 말리는데 카메라를 갖다 대자 금방 날아가 버립니다. 

이는 단순히 시골영감과 호랑나비와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동물들 간의 접점(接點)에서 일어나는 현상, 즉 큰 동물은 본능적으로 작은 동물을 잡으려 하고 작은 동물은 그걸 피하려는 본능으로 한문에는 기(機)라고 씁니다. 날씨가 덥지만 오늘은 이열치열(以熱治熱)로 한자공부 한 번 하겠습니다.

우리가 많이 쓰는 기계, 기미, 비행기에 들어가는 이 기(機)자는 나무로 만든 복잡한 얼개, 옛사람들의 베틀이나 임금의 수레 연(輦)를 연상하면 되겠지만 사실은 사람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한 기계가 아니라 동물이나 적을 죽이려는 무기(武器)로 개발된 것이지요. 처음 그릇형태로 간단하게 만든 인간의 도구가 돌을 깨어 돌칼을 만들면서 점점 날카롭고 복잡하게 되어 창과 칼은 물론 현대의 미사일이 된 것이지요.

그 기(機)의 활용 중 가장 주목할 만한 활용이 기미(機微)의 기입니다. 상대의 움직임이나 미묘한 마음상태를 포착하는 이 기(機)는 차츰 낌새, 조짐(兆朕)으로 발전하고 예측, 의심, 흉계로 발전하는데 이렇게 의심이 많고 눈치가 빠른 자가 마침내 최후의 승자, 왕이 되어 스스로 조짐을 뜻하는 짐(朕)이라고 칭한답니다. 현대문명의 모든 이기(利器)나 통치가 사람을 잘 살게 하려던 홍익인간이 아니라 상대의 움직임을 먼저 파악해 먼저 죽이려던 의심, 기(機)에서 비롯되었다니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가 되지요.

그런데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 무서운 글자로 멈춘다는 뜻의 기(企)자가 있습니다. 글자를 풀면 사람이 멈춰 선다는 뜻인데 왜 멈추나 이유는 길을 가다 어떤 짐승이나 또 사람의 흔적이나 체취를 발견하면 어떻게 상대를 먼저 제압하고 죽일 수 있을까 생각하기 위함이랍니다. 그렇다면 기획(企劃), 기도(企圖)같은 기(企)자가 들어간 모든 단어가 여간 무시무시한 단어가 아닙니다. 기획은 무엇인가 죽이려는 계획이고 기도(企圖)는 실제로 무언가 위험한 일을 저질러보는 일이니까요.

행정관서나 기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기획안이 상사에게 인정받아 자신도 덩달아 출세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아는데 그것 참 조심해야 됩니다. 그 기획이란 것은 조금만 삐끗하면 나치의 게르만족 우월주의나 모택동의 문화혁명, 북한의 천리마운동 기획안처럼 또 작금의 사찰(査察)이나 드루킹처럼 수많은 사람을 힘들거나 죽음에 빠트리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기 마련이니까요?

결국 노자(老子)의 무위자연, 기획(企劃)은 물론 기(機) 따위의 개념이나 단어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지만 그게 쉬운 일도 아니고 말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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