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19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시냇물은 졸졸졸졸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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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31 15:25 | 최종 수정 2021.08.0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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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아들네와 두 손녀와 외식을 겸한 나들이를 했습니다. 그동안 아들이나 딸의 가족이 따로 오면 가장인 제가 돈을 내는 공식외식이 있는데 고기를 굽거나 회를 시켜 저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아주 근엄한 건배사를 하고 식사가 끝나면 바로 귀가하는 식이었지요. 간혹 식사가 끝나면 아이들은 제 부모들과 따로 놀이공원이나 유원지로 놀러가곤 했는데 이번엔 할아버지 할머니와 식사뿐 아니라 나들이도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식사가 끝나고 제가 미리 점찍어둔 간월계곡의 그늘진 물웅덩이를 찾아 나서는데
“여보, 거긴 햇빛이 너무 덥지 않을까?”
아내가 제동을 걸다
“봐. 며느리도 나처럼 모기를 심하게 탄다 잖아?”
하더니 자동차를 어느 커다란 건물 앞에 대더니
“역시 요즘의 피서는 커피숍이 대세야.”
하고 아이스크림과 팥빙수를 시키고는 도무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느긋이 에어컨바람을 즐기는 두 여성과 달리 아이 둘은 잠이 들고 새 풍속에 익숙하지 못한 저는 갑갑해서 휴대폰을 켰지만 안경이 없어 어쩌지도 못해 최악의 가족나들이가 되고 말았는데 어찌 된 셈인지 아들마저 벌써 <서울놈>이 되었는지 늙은 아비가 갑갑한 것을 모르는 척 반쯤 눈을 감고 낮잠을 즐겼습니다.
두 시간 쯤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옆에 울주군에서 공영캠핑장을 지으면서 꿀벌, 메뚜기, 방아개비, 풍뎅이 모양의 캠핑카를 만들어 새운 걸 보고 아이들이 탄성을 질러 한 바퀴 둘러보러 내려갔는데 바로 옆에 작괘천이 졸졸 흐르고 있었습니다.
얼른 아이들을 데리고 아래쪽 하천으로 내려가니 며칠 전 비가 와서 졸졸졸 흘러가는 냇물 속에 사투리로 <눈챙이>라고 부르는 조그만 물고기가 떼 지어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기억력이 좋은 일곱 살짜리 손녀가 갑자기 <여름냇가>란 동요를 부르기 시작하자 여섯 살짜리도 같이 따라 불렀습니다. 세 조손이 나란히 선 개울 뒤로 저렇게 아름답게 내려앉은 하늘빛 좀 보세요. 비로소 뜻 깊은 나들이가 완성되었습니다. 노래가사를 올립니다.
시냇물은 졸졸졸졸
고기들은 왓다갔다
버들가지 한들한들
꾀꼬리는 꾀꼴꾀꼴
......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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