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85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대박! 자연산 미꾸라지

이득수 승인 2021.06.26 14:00 | 최종 수정 2021.06.29 11:40 의견 0

집 뒤에 칼치못이라는 좁고 긴 못이 하나 있습니다. 농사를 많이 짓던 시절에는 물도 깊고 물고기도 많아 술을 즐기는 자형의 술안주 창고이기도 했는데 세월이 많이 흘러 자형도 세상을 떠나고 벼농사를 짓는 사람도 드물어 그냥 버려진 셈입니다.

그런데 어떤 얼빠진 낚시꾼이 베스를 풀어버리는 바람에 토종고기가 멸종해버려서 요즘은 눈엣가시 같은 베스낚시꾼만 보였는데 그마저 작년에 가뭄이 들어 물이 말라 바닥이 새까맣게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올해 봄비가 잦아 물이 조금씩 고이더니 이번 장마엔 만수(滿水)가 된 못에서 소나기를 타고 튀어 오른 새까만 미꾸라지가 묵혀둔 누님네 논(이제 들깨를 심는)에 가득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도 아니고 1년 내내 말라붙었던 밭에 물꼬를 내고 통발을 놓았는데 금방 손가락처럼 굵은 미꾸라지를 가득 잡았습니다. 못 바닥에 퇴적된 검은 버들잎의 보호색을 띤 새까만 미꾸라지가 말입니다. 이 정도면 양식미꾸라지라도 값이 5만 원이 넘을 터이지만 그게 순수한 자연산 미꾸라지라 아무튼 값을 매기기 힘든 보약인 셈이지요.

얼마 전 자형이 돌아가서 아직 맥을 못 차리는 막내누님과 일흔다섯의 셋째누님, 또 저의 간병에 지친 아내가 한데 모여 점심을 먹으며 자꾸 저더러 몸에 좋으니 한 그릇 더 먹으라고 재촉했습니다.

잠깐 서울, 부산의 아들딸이 생각났지만 저들은 젊으니까 저들 나름대로 보양식을 먹으면 되리라 생각하다 문득 울산의 막내동생이 떠올랐습니다. 올해 환갑인 그는 연말에 현대자동차의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데 서른넷의 장남이 취직을 못해 요즘 얼굴을 못 펴고 있습니다. 같이 못 먹는 게 많이 아쉬워 냉동실에 좀 넣어두었다가 나중에 오면 같이 먹을 생각을 하자 비로소 안심이 되었습니다.

집 뒤 칼치못에서 잡은 미꾸라지

이어 특별한 건데기가 없이 단지 꺼칠꺼칠한 호박잎과 정구지를 잘라 넣고 방아와 산초를 듬뿍 넣은 훌렁한 추어탕을 후룩후룩 잘도 들이키던 병든 아버님이 떠올랐습니다. 창밖에 쏟아지는 빗줄기를 타고 마음이 내 생가마을 앞세메와 새벽도랑에 달려가 소쿠리하나를 들고 미꾸라지를 잡고 있었지만 이미 그곳에는 40층도 넘는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고 고속도로에 자동차가 씽씽 질주하고 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 배부른 하루였습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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