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89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성공한 새집

이득수 승인 2021.07.01 19:37 | 최종 수정 2021.07.06 08:12 의견 0
딱새 둥지

지난번 소개한 딱새부부가 무난히 두 마리의 새끼를 키워 떠났습니다. 여름철새인 만큼 숲에서 새끼를 키워 날개가 튼튼해지는 8월 말이면 강남(江南)으로 불리는 양자강 이남의 따뜻한 나라로 겨울을 보내러 떠나겠지요.

제가 명촌별서를 짓고 가진 제일 큰 꿈이 우리 집 울타리에 나무가 우거져 새가 깃들이는 것이었는데 이제 새끼까지 쳐서 나간 것입니다. 작년에 제가 병원에 있다 나와 빈 둥지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올해는 집주인이 번연히 보는 데서 무사히 번식에 성공한 것을 보고 마치 딸을 키워 시집을 보낸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천적의 공격을 피해 너무 음습한 산딸기나무 밑에 둥지를 틀었던 빈 둥지는 장마철에 썩을까 싶어 가지째 잘라 화단의 매화나무에 매달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나름대로 역량을 발휘해 집을 짓는데 나무 위에 엉성하게 집을 짓는 침팬지나 덤불속에 드러눕는 멧돼지나 아무데나 구멍을 찾아 들어가는 뱀이나 개구리보다 직접 나뭇가지나 풀잎으로 집을 짓는 새들의 집이 가장 단단하고 아름답습니다.

아무 도구도 없이 단지 부리 하나로 또 나뭇가지 하나도 없는 부실한 자재 풀잎만으로, 세로로 기둥을 세우지도 않고 가로로만 엮어서 저렇게 아름답고 단단한 둥지를 짓다니? 그래서 그 많은 동물의 집 중에 유일하게 새집만을 둥지라 부르고 가수 남진도 ‘내 품에 둥지를 틀어 봐.’ 라고 열창한 모양입니다.

저도 볼 때마다 마음이 흐뭇하기도 하겠지만 손녀들에게도 좋은 볼거리와 공부거리가 될 것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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